"머리 세 개 괴물 마주한 유럽 경제, 美보다 어려워"

입력시간 | 2022.07.21 오전 12:02:00
수정시간 | 2022.07.21 오전 12:02:00
  • 국제금융 대가 배리 아이켄그린 교수 인터뷰②
  • 남유럽 재정위기 경고등…"伊 눈덩이 부채"
  • "분절화 방지책, 긴축과 양립 가능할지 불확실"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9%대의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4%대까지 올려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국제금융 석학인 배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 경제학과 교수는 19일(현지시간)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4%가량 금리 인상은 연준이 (이번 인플레이션 국면을 벗어나는데 있어) 낙관적인 것일 수 있다”고 비판했다. 더 가파른 긴축이 필요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제금융 석학인 배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 경제학과 교수는 본이 인터뷰에서 “국제금융시장에서 자본 흐름을 결정하는 요인들은 매우 다양하다”며 “한국은행의 우선순위는 자본 흐름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물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사진=UC버클리)



“코로나, 가장 큰 인플레 불확실성 요인”

아이켄그린은 물가 폭등의 원인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바이든 행정부의 재정 확대 등을 거론하면서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 모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최근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다시 퍼지는 코로나19 팬데믹을 두고 “공급과 수요 측면의 인플레이션 불확실성을 키우는 가장 큰 요인”이라며 “우리가 종종 하는 말은 ‘바이러스는 곧 보스’(the virus is the boss)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이켄그린은 아울러 공급망 대란을 두고 “중기적으로 경제 생산량과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이것은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인한 공급망 대란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의 잠재성장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다만 이번 물가 폭등을 두고 1970~80년대보다는 상황이 낫다고 분석했다. 아이켄그린은 “연준은 1970년대만 해도 인플레이션을 이해하지 못했고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데 집중하지 않았다”며 “그 결과 물가를 안정시키는 과정에서 일자리가 크게 감소하는 등 고통이 컸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폴 볼커 전 의장이 살인적인 긴축을 했을 당시인 1982년 9월(10.1%)부터 미국 실업률은 10개월간 두자릿수로 치솟았다.

아이켄그린은 “연준이 지금은 인플레이션에 뒤처져 있지만 따라잡기 위해 (공격 긴축으로) 최대한 빠르게 달리고 있다”며 “1970~80년대보다는 긴축으로 인한 고통은 덜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3.6%다.

아이켄그린은 또 미국의 가파른 긴축 이후 일부 신흥국들에 대한 채무불이행(디폴트) 경고등이 켜진 데 대해서는 “신흥국 중앙은행들은 연준을 보면서 더 과장되게 움직여야 한다”며 “그래야 (국제금융시장에) 인플레이션 목표치 회복에 전념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경기 측면에서 다소 희생이 따르더라도 과감한 금리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ECB 긴축 , 伊 눈덩이 부채로 정책 제약”

아이켄그린은 오는 21일 11년 만의 금리 인상을 앞둔 유럽에 대해서는 경제 사정이 미국보다 훨씬 더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럽은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이탈리아 부채 등 머리 세 개 달린 괴물(three-headed monster)과 마주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역내 3위 경제 대국인 이탈리아의 눈덩이 부채를 우려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이탈리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155.3%로 역대 최고다. 2019년 당시 134.1%에서 돌연 치솟았다. 이는 근래 유로화 초약세를 부추기고 있는 악재로 꼽힌다.

아이켄그린은 “유럽중앙은행(ECB)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릴 경우 이탈리아 국채금리를 폭등시킬 수 있다”며 “ECB가 이탈리아의 부채 문제로부터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CB는 21일 통화정책회의에서 11년 만의 금리 인상을 예고한 상태다. 그런데 자칫 물가를 잡고자 과도하게 긴축을 할 경우 이탈리아 같은 고부채 국가들의 차입 비용이 급증해 재정위기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아이켄그린의 우려로 읽힌다.

그는 “ECB는 (유로존 내 채권시장 분절화 방지를 위한) 새 정책을 갖고 있다”면서도 “금리 인상과 새 정책이 양립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ECB가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를 선별 매수하는 식의 정책을 함께 내놓으면서 역내 안전자산인 독일 국채와 금리 차이(스프레드)를 좁히려 하겠지만, 결국 역내 특정 국가들은 통화 긴축이 아닌 완화를 하는 것이어서 실제 효과는 부정적이라는 뜻이다. 아이켄그린은 “(머리 세 개 괴물을 상대해야 하는) ECB는 연방준비제도(Fed)보다 어려운 위치에 있다”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가 다시 덮칠 수 있다는 우려가 비등하다. 2011년 이탈리아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119.7%로 지금보다 낮았다.

그는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진 데 대한 투자자 조언을 구하자 “증시를 예측할 수 있다면 이번 인터뷰 말고 다른 일을 했을 것”이라고 농담조로 말을 아꼈다. 그는 자신의 지도 교수였던 제임스 토빈 전 예일대 교수의 포트폴리오 이론을 거론하면서 “이럴 때일수록 한 바구니에 계란을 다 담지 말고 다양화해야 한다”는 정도만 언급했다.

배리 아이켄그린 교수는…

△미국 UC산타크루즈 경제학 학사 △예일대 경제학 석·박사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정책자문위원 △전미경제연구소(NBER) 연구위원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자문교수위원장 △UC버클리 경제학과 교수 △UC버클리 한국학연구소 전임교수 △국제슘페터학회 슘페터상(2010년) △포린폴리시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100인’(2011년)
김정남 기자jungkim@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