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스틸러]'기생충'→'동백꽃'…28년 걸린 이정은의 봄날

입력시간 | 2019.11.08 오전 12:10:21
수정시간 | 2019.11.08 오전 12:10:21
  • '동백꽃' 모성 연기 호평…수목극 1위 공신
  • 업계 "이정은 캐스팅 미루다 후회도"…CF 러브콜까지
  • 긴 무명·다작 행보 덕분…영화 '자산어보' 개봉 앞둬

KBS2 수목극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공효진 분)의 엄마 정숙 역할로 모성애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이정은. (사진=방송화면)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쫄지 마라. 쪼니까 만만하지” “동백이를 위해 뭐 하나는 꼭 해주고 갈거다”

20%에 가까운 시청률을 경신하며 수목극 왕좌를 책임지고 있는 KBS2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배우 이정은의 절절한 모성애 연기로 시청자들을 울리고 있다.

2019년은 데뷔 28년 만에 배우 이정은의 존재감을 입증케 한 ‘인생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 들어 화제와 흥행을 이끈 작품에는 이정은의 연기가 빠지지 않고 회자됐다. ‘기생충’의 흥행으로 올해 영화계 각종 수상을 휩쓴 그는 최근 ‘동백꽃 필 무렵’과 ‘타인은 지옥이다’ 등 드라마에서도 냉온탕을 오가는 연기로 시청자를 사로잡아 방송과 광고계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다. 배역의 비중과 관계 없이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와 대사, 제스처가 극의 분위기와 장르에 반전을 주고 인물 간 관계 진전과 변화의 각성제가 되어준다는 분석이다. 무명시절부터 꾸준히 연극, 드라마, 영화 무대를 오가며 단역부터 쌓아온 뚝심과 다작을 통한 다양한 연기 변신 행보가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지난 6일 방송된 ‘동백꽃 필 무렵’ 방송화면.

1000만 배우→수목극 왕좌…CF 러브콜 쏟아져

지난 6일 방송된 KBS2 ‘동백꽃 필 무렵’은 닐슨코리아 전국가구 시청률 15.2%~18.2%를 기록해 압도적인 수목극 1위 자리를 지켰다.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던 지난달 31일 시청률(18.4%)에는 못 미치지만 18%대를 웃도는 수치에 20%대 돌파에 관심이 집중된다.

특히 이정은이 분한 동백(공효진 분)의 어머니 ‘정숙’은 최근 극의 전개를 풀어나가는 열쇠,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한다. 특히 6일 방송에서는 정숙이 자신의 사망 보험금을 주고자 딸 동백을 찾아온 사연이 밝혀지고 연쇄살인마 까불이로부터 동백을 지키고자 죽음의 위기에 몸을 직접 던지는 모습을 그려 눈물을 자아냈다. 또 직접 흥식(이규성 분)을 찾아가 ‘너지, 까불이’라며 도발하는가 하면 까불이로 추정되는 의문의 인물에게 미행을 받다 뒤돌아서 마주하는 결정적 장면 등 살인마의 정체를 추측할 여러 실마리까지 제공해 흥미와 긴장감을 더한다.

사실 정숙은 과거 가난 때문에 동백을 버려 어머니로서 딸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겨준 캐릭터다. 그럼에도 치매환자 행세를 하며 동백의 곁을 지키는 정숙의 서툰 희생에 시청자들이 깊이 공감하며 눈물 흘릴 수 있게 한 데는 이정은표 생활 및 표정 연기가 컸다는 평가다.

이정은은 이에 대해 매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미혼이다. 엄마로서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어 부족하다”면서도 “그 배우와 함께 먹고 마시고 생활하는 걸 꾸준히 생각하려 노력한다”고 연기 비결을 전했다.

전작인 웹툰 원작 OCN드라마틱시네마 ‘타인은 지옥이다’(이하 ‘타지옥’)에서는 살인마 중 한 명이자 친근한 표정 뒤 잔혹성을 숨긴 고시원 주인 ‘엄복순’역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드라마 출연 뒤 집 구하기 애플리케이션인 ‘직방’ 광고를 따내 화제가 됐다.

방송계 관계자는 “이정은이 영화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를 가면서 ‘1000만 배우’ 수식어를 얻은데다 이후 출연한 드라마들까지 승승장구하니 이전에 타이밍이 흐지부지돼 그를 섭외하지 못했던 수많은 관계자들이 땅을 치고 후회한다고 들었다”며 “지금은 작품 대본은 물론 CF출연 요청까지 끊임없이 쇄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사진=‘대화의 희열’ 방송화면 캡쳐)

긴 무명시절·다작으로 다진 내공

앞서 이정은은 한국 최초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에서 가정부 문광 역할로 스타덤에 올라 제24회 춘사영화제와 제28회 부일영화상에서 각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올 초 방영한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로 제5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조연상까지 거머쥔 그다.

그럼에도 ‘흥행보증수표’, ‘1000만 배우’란 수식어는 그냥 얻어지지 않았다. 관계자들은 28년이란 긴 무명시절, 연극과 드라마, 영화를 가리지 않는 도전과 다작 행보가 없었다면 지금의 그도 없었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이정은은 1991년 연극 ‘한 여름 밤의 꿈’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올해 주목을 받기 전까지는 단역의 연속이었다. 그는 지난 6월 예능 출연을 통해 동료 배우들에게 돈을 빌리고 마흔살까지 학원 강사, 녹즙 판매원 등 부업을 뛰며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사연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영화 ‘마더’(2009), ‘변호인’(2013), ‘카트’(2014), ‘곡성’(2016) 등 영화에서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겨 봉준호, 김석윤 등 감독들과 계속 인연을 이어나갔다. 브라운관에서도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2015), ‘리멤버-아들의 전쟁’(2015), ‘월개수 양복점 신사들’(2016), ‘미스터 선샤인’(2018), ‘아는 와이프’(2018)에 출연하며 진지함과 코믹을 오가는 연기로 신스틸러로서 입지를 다져나갔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연말까지 쉬지 않고 행보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동백꽃 필 무렵’이 끝난 뒤에는 이준익 감독에 설경구 변요한과 함께 주연을 맡은 영화 ‘자산어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김보영 기자kby5848@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