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혜선 기자] “백범 선생을 시해한 그 자는 인간 쓰레기입니다. 청소부 심정으로 그를 처치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고(故) 박기서 씨. (사진=연합뉴스)

백범 김구(1876∼1949)를 암살한 안두희를 찾아가 자신이 만든 ‘정의봉’으로 살해한 박기서씨가 10일 세상을 떠났다. 박씨 유족에 따르면, 그는 이날 0시10분께 경기도 부천 한 병원에서 지병으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향년 77세.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박씨는 안두희 살해 사건 이전까지 평범하고 조용하게 살아왔다. 경기도 부천 소신여객 시내버스 기사로 일하던 그는, 47세가 되던 1996년 10월23일 인천에 위치한 안두희를 찾아가 그를 ‘정의봉’으로 때려 죽였다.

‘정의봉’은 시장에서 산 40㎝ 길이 홍두께에 자신이 직접 글자를 적어 만들었다고 한다. 80세의 노인이 된 안두희는 사망했고, 박씨는 범행 후 성당에 찾아가 고해성사를 하고 경찰에 자수했다. 박씨는 경찰에 “백범 선생을 존경했기에 안두희를 죽였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당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도 자신은 ‘인간 쓰레기’를 청소한 것 뿐이라고 했다.

안두희의 사망 소식에 사회에서는 박씨의 구제 운동이 크게 일었다. 안두희는 1949년 6월26일 김구 선생을 권총으로 살해한 인물로, 전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킨 인물이었다.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김구 선생은 국부(國父)로 불릴 만큼 존경을 받았으나, 육군 장교로 근무하던 안두희는 별다른 원한도 없이 그를 찾아가 권총으로 암살했다.

안두희는 자신이 왜 김구 선생을 살해했는지 그 배후를 밝히지 않았다. 법정에서는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감형됐고, 탐탁지 않은 이유로 범행 3년 만에 풀려나 사면까지 받았다. 이후에도 안두희는 호의호식하며 지냈고, 많은 이들이 안두희에게 김구 살해의 배후를 밝히라고 압박했지만 80에 가까운 노인이 될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박씨가 안두희를 살해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수많은 사회 각계층에서는 박씨가 ‘옳은 일’을 했다며 구제운동을 벌였다. 박씨는 경찰에 자수하며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를 죽임으로써 역사가 무섭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실제로 박씨는 살인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지만 1심에서 징역 5년, 2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아 대법원에서 3년형이 확정됐다. 이마저 특별사면으로 1년 4개월 만에 출소됐다.

출소 후 박씨는 그동안 살아왔던 대로 다시 평범하게 살았다. 기존에 일하던 소신여객 버스 기사로 다시 일했고, 2002년에는 개인 택시 면허를 취득해 일했다. 지난 2018년에는 안두희 살해 당시 쓴 ‘정의봉’을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한편, 유족은 부인 원미자씨와 1남1녀(박안숙·박찬종), 사위 박기훈씨 등이 있다. 빈소는 부천장례식장 7호실, 발인 12일 오전 5시, 장지 남양주 모란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