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군함 2척 끌고 왔던 韓…38년 만에 다국적해군 지휘국 우뚝
- 정조대왕함 출항, 2026 환태평양훈련 참가
- 1988년 옵서버에서 2026년 연합해군구성군사령관으로
- 최대 다국적 해상훈련서 수상함·잠수함 40여 척 지휘
- '큐티 네이비'에서 글로벌 해양강군으로 도약
지난 2022년 환태평양훈련(RIMPAC·림팩)에 참가한 우리 해군 장병들이 내건 이 문구는 4년 뒤 현실이 됐다. 1988년 옵서버(observer) 자격으로 훈련장을 찾았던 대한민국 해군이 올해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다국적 해상훈련에서 다국적 연합 해군을 지휘하는 위치에 올랐다. 단순 참가국을 넘어 연합작전을 주도하는 핵심 국가로 성장한 것이다.
정조대왕함, 림팩 참가 위해 제주기지 출항
해군은 1일 이지스구축함 정조대왕함(DDG·8200t급)이 2026 환태평양훈련 참가를 위해 제주해군기지에서 출항했다고 밝혔다. 올해 림팩은 6월 말부터 8월 초까지 미국 하와이 일대에서 진행된다. 미국이 주도하는 림팩은 태평양 연안국 간 주요 해상교통로 보호와 다양한 해상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 다국적 연합 전력의 상호운용성 향상을 위해 1971년 시작된 세계 최대 규모의 다국적 해상훈련이다.
올해 훈련에는 한국과 미국, 일본, 호주, 캐나다 등 30여 개국이 참가한다. 수상함과 잠수함 40여 척, 항공기 150여 대와 수만 명의 병력이 참가하는 실전적 연합훈련이다. 특히 퇴역 함정을 표적으로 활용해 함포와 대함미사일, 어뢰 등을 실제 발사하고 표적함을 격침하는 고강도 훈련으로 유명하다.
주목되는 것은 우리 해군이 처음으로 연합해군구성군사령관(CMCC) 임무를 수행한다는 점이다. 연합해군구성군사령관은 림팩 최고 지휘부인 연합기동부대사령관(미 해군 제3함대사령관) 예하에서 훈련에 참가한 다국적 해군 전력의 해상작전을 총괄·통제하는 핵심 직책이다. 사실상 세계 각국에서 파견된 수상함과 잠수함 전력을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자리다. 한국은 미국이 아닌 국가로서 연합해군구성사령관 임무를 수행하는 역대 네 번째 국가이자,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임무를 수행하게 됐다.

1일 해군 제주기지에서 진행된 2026 환태평양훈련부대 환송행사에서 조완희 정조대왕함장(대령, 가운데 앞)과 훈련부대원들이 파견 신고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해군)
한국 해군의 림팩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 의미는 더욱 크다. 우리 해군은 1988년 처음 옵서버 자격으로 림팩을 참관했다. 정식 참가가 시작된 것은 1990년이다. 당시 전력은 울산급 호위함 서울함과 마산함 등 1500t급 함정 2척이 전부였다. 지금처럼 대형 구축함이나 잠수함, 해상초계기 전력은 꿈꾸기 어려웠던 시절이다.당시 해외에서는 우리 해군을 ‘큐티 네이비(Cutie Navy)’라고 부르기도 했다. 작은 호위함 위주 전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해군은 림팩을 통해 꾸준히 원양작전 능력과 연합작전 수행능력을 키워갔다. 참가 초기부터 평균 5000t급 이상의 외국 구축함들과 경쟁하며 뛰어난 함포 사격 실력을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1998년에는 장보고급 잠수함 이종무함과 P-3 해상초계기가 처음 참가하며 수중전 능력을 과시했다. 이후 2000년에는 광개토대왕급 구축함과 링스 해상작전헬기까지 참가해 수상·수중·공중을 아우르는 입체 전력을 선보였다. 특히 당시 박위함은 가상 해전에서 적 함정 11척을 격침하고 끝까지 생존하는 성과를 거두며 참가국들의 관심을 끌었다.
2002년에는 나대용함이 잠대함 유도탄을 발사해 표적을 명중시켰고, 원주함은 초계함 최초로 하푼 미사일 실사격에 성공했다. 2004년에는 충무공이순신함이 함대공미사일 SM-2를 발사해 함대 방공 능력을 입증했다. 당시 미 해군 지휘관들은 한국 해군의 전술 운용 능력과 정보교환 능력에 높은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첫 연합해군구성군사령관 임무 수행
2010년은 한국 해군이 세계 최고 수준의 전투함 운용 능력을 입증한 해로 꼽힌다. 당시 처음 참가한 세종대왕함은 함포 사격 분야 최고 영예인 ‘탑건(Top Gun)함’에 선정됐다. 참가 함정 가운데 유일하게 오차 합계 100m 이내를 기록하며 정밀 사격 능력을 인정받았다. 2012년에는 해병대가 처음 림팩에 참가했고, 미국을 제치고 종합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전력 확대와 함께 한국 해군의 지휘권도 꾸준히 확대됐다. 2006년 처음으로 다국적 수상전투단장을 맡은 데 이어 2014년에는 항모강습단 해상전투지휘관(SCC)을 수행했다. 2016년에는 원정강습단 해상전투지휘관을 맡아 미 해군 핵심 전력 운용에 참여했다.

지난 2024년 환태평양훈련(RIMPAC)에 참가한 해군 이지스구축함 율곡이이함이 하와이 인근 해상에서 고속으로 접근하는 대공무인표적기를 향해 SM-2 함대공유도탄을 발사하고 있다. (사진=해군)
2022년은 또 다른 전환점이었다. 해군은 마라도함을 포함한 함정 3척과 잠수함 1척, 항공기 3대, 상륙돌격장갑차 9대, 장병 1000여 명을 파견해 역대 최대 규모 전력을 투입했다. 이 훈련에서 우리 군은 처음으로 원정강습단장 임무를 맡아 8개국 13척 규모의 다국적 전력을 지휘했다. 당시 미 인도태평양사령부가 우리 장병들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해 왔다”는 문구를 공식 SNS에 소개한 것도 이 때문이다.2024년에는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우리 해군은 연합해군구성군 부사령관 임무를 처음 수행하며 미 해군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과 일본 해상자위대 마야급 이지스 구축함 등을 포함한 연합 전력 운용에 참여했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전력을 파견한 국가로서 연합작전의 핵심 축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올해는 마침내 연합해군구성군 사령관 임무를 맡게 됐다. 정조대왕함을 중심으로 한 한국 해군은 P-8 포세이돈 해상초계기와 3000t급 잠수함 도산안창호함 등 최신 전력을 투입해 다국적 해군 전력을 지휘하게 된다. 1988년 참관국에서 출발해 38년 만에 연합 해군 사령관 역할을 맡게 된 셈이다.
림팩 지휘관 김인호 소장은 “우리 해군이 2024년 훈련에서 연합해군구성군사령부 부사령관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이번에 사령관 임무를 처음으로 맡게 된 것은 훈련참가국의 위치에서 지휘국으로 도약했음을 의미한다”며 “대한민국 해군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국민을 지키는 정예해군’의 위상을 세계 속에 드높이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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