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현대자동차 그룹이 미래 먹거리를 위해 대규모 미국 추가 투자를 결정했지만 노조는 파업도 불사하겠다면서 강경 투쟁을 예고해 노사 간 불협화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완성차 산업이 해외 생산 확대와 로봇 투입이라는 ‘뉴 노멀’과 맞닥뜨린 상황에서 파업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노조에 대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보스턴 다이나믹스 휴머노이드 ‘아틀라스’가 외부 방해에도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 (사진=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은 이재명 대통령의 미국 순방이 진행 중이던 지난 26일 미국에 50억달러(약 7조원)를 추가 투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그룹은 앞서 지난 3월 미국에 210억달러(약 30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번 결정으로 총 대미 투자액은 260억달러(36조원)로 늘어났다.

50억달러 추가 투자는 제철을 비롯해 자동차, 로봇에 집중 집행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자동차 생산량을 늘리고 생산 공정에 로봇을 적극 도입한다는 게 핵심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70만대 수준이던 미국 완성차 생산량을 대폭 확대하고 전기차, 하이브리드, 내연기관차 등 다양한 라인업을 선보일 것”이라며 “또 3만대 규모의 로봇 공장을 신설해 미국 내 로봇 생산 허브로 자리매김시키겠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은 로보틱스 자회사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통해 제조 공정 자동화를 준비해 왔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스팟(로봇개) △아틀라스(휴머노이드) △스트레치(물류 자동화) 등 로봇을 보유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10월부터 조지아주 메타플랜트(HMGMA)에 아틀라스를 본격 투입할 예정이었다.

이번 투자 결정으로 ‘로봇 직원’ 도입에 속도가 점점 붙을 전망이다. 현대차에 따르면 아틀라스의 첫 임무는 ‘파트 시퀀싱’으로 자동차 조립에 필요한 부품을 순서에 맞게 배열하는 사전 업무다. 내년부터는 용접·도장 공정 보다 위험한 작업까지 확대한다. 추후 차량 조립라인의 40%를 로봇화하고 로봇 1대 당 인력 1.5명의 효율성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최태용 DS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에서 아틀라스가 성공적으로 임무를 달성하면 현대차 울산 전기차 공장과, 기아 광명 EVO 플랜트 등 국내 공장에도 투입될 수 있다”고 했다.

사측이 그룹의 미래를 위해 선제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지만 노조의 행동은 시대와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 25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임단협 결렬에 따른 쟁의 찬반 투표를 진행, 약 90.93%의 찬성률로 통과시켰다. 전날 이동석 현대차 사장이 노조에 교섭 재개를 요청하며 이날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노조 요구안에 대한 입장 차이가 워낙 커 파업의 불씨가 잦아든 상황은 아니다. 노조는 28일 중앙쟁의대책위원회 출범식을 열 예정이다.

한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상호관세 쇼크, AI 기반 로봇 생산 확대로 완성차 산업이 거대한 변혁기에 있는 가운데 노조는 파업이라는 구시대적 카드를 쥐고 있다”며 “통상 질서 재정립, 기술 발전이 일자리를 빼앗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노사가 공생할 수 있는 대승적 판단을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