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트럼프발(發) 관세 폭탄 조치로 글로벌 무역 전쟁이 확전 양상을 보이는 상황에서 정부가 맞불식 대응보다는 무역 균형을 위한 경제협력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미국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조선업 협력, 미 가스관 사업 투자 확대 등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복안이다.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고질적인 무역 적자의 원인으로 지목한 비관세 장벽을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검토 작업에도 착수했다. 다만 미국산 수입 제품 확대에 따른 국내 산업과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데다 국내 미국 주둔 비용 인상과 같은 비통상 이슈도 ‘원샷’으로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협상에는 적잖은 난항이 예상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8일 오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를 하고 있다.(사진=총리실 제공)

◇정부 “관세율 조정이 최우선 목표”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과 통상 문제 관련 포괄 협상 사안에 대해 “관세율이 문제이기 때문에 관세를 조정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라고 말했다.

정부는 미국의 고관세 조치에 따른 국내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우선 경제 분야에서 협력을 가속화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실제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전날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 진행한 한미 정상 간 통화에서 조선, LNG 및 무역 균형 등 3대 분야에서 한 차원 높은 협력을 하자고 제안했다.

한 권한대행은 또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산 LNG 대량 구매와 알래스카 가스관 사업 합작 투자 등을 먼저 제안했다. 미국 상호관세 부과에 대한 관세율 조정을 목표로 ‘패키지 딜’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총리실 관계자는 “(미국과 무역 적자 해소 방안의 일환으로) 투자, 구매, 조선업 협력 등을 포함해서 중장기적으로 무역 균형을 이루는 방안을 고려 중에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부과하는 국가별 상호관세는 9일 0시 1분(미 동부 현지시간 기준, 한국 기준 9일 오후 1시1분) 발효돼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정부는 통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협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 권한대행이 급파한 정인교 산업부 통산교섭본부장은 8~9일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해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미국 정부 주요 인사를 면담할 예정이다. 다만 협상 타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 본부장은 전날 미국 워싱턴 D.C. 인근 델레스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목표는 상호관세를 아예 없애는 것이고, 그것이 어렵다면 일단 낮춰가는 것인데 아마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며 “단계별로 접근해서 미국 측과 원만한 협의를 이끌어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사진=로이터 제공)

◇방위비 인상 문제로 정부 고민…“단계적 증액 고려”

문제는 미국의 고관세 조치에 우리나라가 대응할 카드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미 중국, 유럽연합(EU) 등 주요 국가들은 보복 관세조치 등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히면서 글로벌 통상 전쟁이 현실화하고 있지만, 대미(對美)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산 수입을 늘리는 것 외에는 뾰족한 대안은 없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강조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라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도 포괄적인 협상으로 묶이게 되면서 더욱 소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장 이날부터 한국은 미국으로 수출하는 모든 물품에 25% 관세가 붙게 됐다. 이는 미국의 한국 무역적자액(660억달러)을 미국의 한국 수입액(1311억달러)으로 나눈 값(50.3%)의 절반이다. 미국 정부가 ‘최악의 침해국’(worst offenders)으로 분류한 국가 중 아시아권에 해당하는 중국(84%), 캄보디아(49%), 베트남(46%), 태국(36%), 대만(32%), 일본(24%) 등과 같이 기본 관세(10%) 이상의 고율의 상호 관세가 불가피해진 것이다.

전임 미국 대통령인 조 바이든 행정부와 우리 정부가 지난해 말 타결한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의 재협상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한미는 지난해 10월 2026년부터 적용하는 방위비 분담금을 전년도 대비 8.3% 인상한 1조5192억원으로 정하고, 2030년까지 매년 분담금을 올릴 때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을 반영키로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협정을 타결했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출범 이후 방위비 인상을 노골적으로 꺼내며 협상 테이블에 올린 만큼, 상호관세 후속 협상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이 주장하는 무역 적자나 비관세 장벽 해소를 위한 절충교역 관점에서 우리 정부는 에너지 구입처 다변화, 미국산 소고기 수입월령 제한 조치 완화, 미국산 무기 구입 시 기술이전 조건 요구 배제, 네트워크 망 사용료 불균형 해소 등을 고려해 볼 만하다”며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단계적으로 증액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