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루마니아의 중도 성향 클라우스 요하니스(65)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야권의 탄핵 표결을 앞두고 자진 사임했다. 이번 결정은 오는 5월 대선 재실시를 앞두고 극우 세력이 부상하는 가운데 내려졌다.

클라우스 요하니스 루마니아 대통령(사진=AFP)

1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요하니스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루마니아가 불필요한 정치적 위기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요하니스 대통령은 2014년 임기 5년의 대통령에 당선된 뒤 연임에 성공해 임기는 작년 12월 21일까지였다. 그러나 작년 11월24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 1차 투표 결과가 무효가 되면서 임기가 연장됐다.

유럽연합(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루마니아는 작년 치러진 대통령 1차 투표에서 NATO 비판 성향의 극우 정치인인 컬린 제오르제스쿠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정치적 혼란에 빠졌다.

제오르제스쿠 후보는 당시 예상을 깨고 1위를 차지하며 결선에 진출했으나 러시아의 선거 개입 의혹이 제기됐고, 루마니아 헌법재판소는 선거를 무효화하며 오하니스 대통령이 후임자가 선출될 때까지 직무를 계속 수행하라고 결정했다.

그러나 의회 내 극우 성향의 3개 야당이 요하니스 대통령의 탄핵안을 발의하면서 루마니아의 정국은 더욱 불안해졌다.

루마니아의 극우 정당은 친유럽 성향의 기존 정치권이 부패에 연류됐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유권자들의 반발심을 자극해왔다. 탄핵안이 의회에서 표결될 예정이었으며, 요하니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고려할 때 일부 주류 정당 의원들도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이 거론되자 그는 자진 사임을 선택했다. 요하니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탄핵시도가 국내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10일(현지시간) 부쿠레슈티의 루마니아 정부 청사 앞에서 극우 정치인 컬린 제오르제스쿠 대통령 후보 지지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AFP)

요하니스 대통령의 사임으로 인해 집권 연정 소속 자유당 대표인 일리에 볼로얀 상원의장이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다.

연정 내 3개 정당이 공동 지지하는 크린 안토네스쿠 대통령 후보는 “탄핵 절차가 진행됐다면 불필요한 논쟁을 초래했을 것”이라며 “차라리 사임이 낫다”고 평가했다.

루마니아에서 선거 무효 판결 이후에도 제오르제스쿠 후보의 지지율은 거의 두 배로 상승하며 유권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가장 선호되는 후보로 남아있다. 그러나 그가 대선에 다시 출마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로이터는 짚었다. 작년 10월 헌법재판소가 또 다른 극우 정치인의 출마를 금지한 전례가 있어서다.

요하니스 대통령에 반대하며 거리 시위를 이어온 극우 정당들은 그의 사임을 또 하나의 승리로 선전하고 있다. 이날 부쿠레슈티 정부 청사 앞에서는 약 1000명의 제오르제스쿠 지지자들이 시위를 벌였고 일부 참가자들은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루마니아 최대 규모의 공립 종합대학교인 바베슈 보여이 대학의 세르지우 미스코이우 정치학 교수는 로이터에 “요하니스 대통령이 작년 12월 사임했다면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는 오히려 극우 야당이 결집할 계기를 제공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루마니아 대선 재선거는 5월 4일에 시행된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2주 뒤인 5월 18일 결선 투표에서 최종 당선자를 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