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파괴했다고 선언했지만, 이란은 핵 시설 손상이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핵 활동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에 이란이 여전히 핵무기 개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국제사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부 핵 전문가들은 이란의 핵무장 능력이 사실상 초토화됐더라도 은닉 시설과 고농축 우라늄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오히려 미국의 공습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지를 더욱 자극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공습 전인 19일(현지시간) 이란의 포르도 핵 시설 인근에 긴 트럭 행렬이 늘어서 있는 것을 위성으로 촬영한 모습. 트럭들은 포르도에서 무언가를 실은 뒤 20일(현지시간)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사진=힌두스탄 타임스 영상 캡처)

이란, 핵물질 이동시킨 정황…잠재적 핵 역량 유지?

이코노미스트는 22일(현지시간)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 전문가들을 인용해 이란의 핵무장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보도했다. IAEA는 전날 미국의 공습으로 “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이 직접 타격을 받았으나, 지하 농축 시설의 피해 정도는 확인이 어렵다”고 밝혔다. 미 합참의장 댄 케인 장군도 이란의 핵 시설 3곳 모두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면서도 “정확한 피해 평가는 시간이 걸린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란은 미국의 공습을 예상하고 3곳의 핵 시설을 미리 대피시켰기 때문에 결정적 피해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미국의 공습 직전 포르도에서 트럭을 동원해 고농축 우라늄 등 핵물질을 다른 장소로 옮긴 정황이 위성사진 등을 통해 포착됐다. 사실이라면 이란은 여전히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잠재’ 역량은 갖춘 셈이다.

IAEA에 따르면 이란은 순도 60% 고농축 우라늄(HEU) 408kg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무기급(순도 90%)으로 농축하면 핵무기 9~10개를 만들기에 충분한 양이다. 기술적으로 순도 60%에서 90%까지 농축하는 것은 길어도 한 달 이내에 가능하다. 미 중부사령부 마이클 쿠릴라 사령관과 백악관 대변인은 “이란이 2주 내 핵무기를 획득할 수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일부 외신들은 이스파한 핵 시설 역시 일부 건물과 지하 터널 입구가 파괴된 것이 확인됐으나, 핵물질 저장고가 완전히 무력화됐는지는 불분명하다고 전했다. 이스파한 시설에는 우라늄 금속을 기체 화합물로 바꾸고 원심분리기를 이용해 가스를 농축하는 시설 단지가 있다. 고농축 우라늄 재고 상당량도 이곳에 저장돼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스카이뉴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처럼 이스파한, 나탄즈, 포르도 핵 시설이 파괴됐거나 혹은 마비만 됐어도 이란의 우라늄 농축 능력은 중단됐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이것이 이란의 핵무기 제조 능력을 완전히 막았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짚었다.

전문가 “美공습이 ‘핵무장 시계’ 늦춰…기술 장벽도”

대다수 핵 전문가들은 이번 미국의 공습이 “이란의 핵무장 시계를 수년 뒤로 미뤘다”는 데 동의했다. 이란이 잠재적 위협인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실행 가능한 핵보유국은 아니라는 것이다. 핵무기 제조 및 실전 배치까지는 무기급 우라늄 확보 외에도 핵분열 유발 기술과 운송 수단이 추가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IAEA 및 전문가 분석 등을 종합하면, 미국의 공습 전 이란은 무기급 우라늄을 확보할 수 있는 조건만 갖춘 상태였다. 핵무기 제조까진 기술적 장벽이 존재한다. 이란은 2021년부터 기체 우라늄을 고체 우라늄으로 가공하는 실험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내폭형 설계(고폭탄으로 우라늄을 균일하게 압축해 핵분열을 유발하는 정밀 장치 제작) 실험은 성공 사례가 확인된 바 없다. 미사일·폭격기 등에 탑재 가능한 소형화된 핵탄두 제작 기술도 부족하다.

미 국무부 관리 출신인 리처드 네퓨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IEP) 선임연구원은 “공습 충격과 진동만으로도 원심분리기는 치명적 손상을 입을 수 있다”며 “포르도에 설치된 최신형 IR6 원심분리기도 이번 폭격에 상당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이란이 사전에 원심분리기를 분해하거나 우라늄을 반출했을 경우 실제 피해는 제한적일 수 있다”면서도 “원심분리기는 전원을 끄는 과정에서 고장이 날 수 있다. 이란이 가능한 시간 내에 원심분리기를 끄고 분해까지 할 수 있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덧붙였다.

원심분리기는 미사일로 운반할 수 있는 소형 폭발형 탄두에 필요한 순도 90%의 농축 우라늄 생산에 필요한 도구다. 포르도의 IR6 원심분리기가 가장 견고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나탄즈와 이스파한에 설치된 IR1 원심분리기 역시 파괴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다.

워싱턴DC 소재 싱크탱크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의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소장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포르도 핵 시설은 훨씬 더 취약하다. 이스라엘은 건물 설계와 관련해 상세한 정보를 갖고 있다. 내부 터널이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로 어떻게 뻗어 있는지, 환기 시스템이나 전력 공급장치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있다”며 “단 하나 뿐인 환기구만 파괴해도 포르도는 몇 달이 아니라 몇 년 동안 가동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미국의 공습이 큰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이달 초 “나는 포르도 핵 시설에 가본 적이 있다. 가장 민감한 것들(핵 물질들)은 지하 800미터 깊이에 있었다”고 말했다.

이란 포르도 핵 시설이 미군의 공습으로 구멍이 뚫려 있는 모습.(사진=AFP)

이란 핵 개발 의지 자극 우려…NPT 탈퇴 가능성도

핵심 시설이 타격을 입었더라도 이란이 이미 확보한 고농축 우라늄과 은닉 기술, 소규모 실험실에서 진행 가능한 무기화 기술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습만으로 핵무기 개발 의지를 원천 차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로즈메리 켈라닉 미국 디펜스프라이오리티즈 중동프로그램 국장은 “미국의 공습이 오히려 이란의 핵무기 개발 동기를 자극할 수 있다”며 “설령 모든 시설이 파괴됐더라도 이란은 핵무기화까지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경고했다.

이란 지도부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NPT 탈퇴시 IAEA의 사찰이 불가능해진다. 이는 이란이 중동은 물론 국제사회의 최대 안보 불안 요소로 급부상할 수 있다는 의미다.

향후 미국이 이란 핵 시설에 대한 추가 공격을 단행할 것인지, 혹은 이란이 핵무장을 실현해낼 것인지 국제사회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정보당국은 “공습 전까지 이란은 핵무기 개발 결정을 내리지 않았으나, 이번 공격으로 핵무기 보유만이 국가 생존의 유일한 보루라는 인식이 확산했을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