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쉬지 않습니다”…청년들의 `한숨` [난 괜찮아요]

입력시간 | 2026.09.24 오후 2:00:04
수정시간 | 2026.09.24 오후 2:00:04
  • 취업 적정연령 “없다” 62.6%
  • 퇴사 이유 44.4% 근로여건 불만
  • 일 경험 뒤 워라밸·적성 기준 강화
  • 20·30대 쉬었음 83.4% 취업 경험
  • 진로탐색기회·조직문화 개선 수반돼야
명절을 맞아 모인 가족들이 서로를 이해하자는 취지로 [난 괜찮아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자퇴한 청소년부터 취업을 미루는 청년, 결혼을 하지 않는 이들, 자녀 계획이 없거나 황혼 연애·재혼을 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평소 그들의 속내를 알지 못했다면 이번 명절을 계기로 조금은 이해해보면 어떨까요? [편집자주]


[이데일리 이민하 기자] “아직 취업은 안 했니?”

추석이나 설 등 명절에 만나는 친지들로부터 듣는 대표적인 질문이다. 특히 이 질문에 ‘아직’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청년들이 대답하기까지는 평소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무엇을 준비하는지보다 왜 직장이 없는지부터 설명해야 해서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현재의 삶에서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에 대한 얘기는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서울의 한 대학교에 설치한 취업 게시판 앞에서 학생들이 게시물을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대학교에 설치한 취업 게시판 앞에서 학생들이 게시물을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청년들이 생각하는 취업의 시점과 조건은 딱 하나로 정의하기 어렵다. 실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청년의 성인기 이행경로 연구’에서 2025년 조사에 참여한 1139명의 62.6%는 일을 시작해야 하는 연령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답했다.

응답자 대부분이 만 27~28세인 이 조사에서 선호한 일자리는 급여가 높은 회사(21.5%), 적성에 맞는 회사(21.1%), 안정적인 회사(19.9%) 등 비슷한 수치의 이유가 여럿이었다.

취업했다고 고민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국가데이터처의 올해 5월 청년층 부가조사에서 졸업·중퇴한 15~29세 청년 중 첫 일자리를 그만둔 이들의 가장 큰 퇴사 사유는 보수·근로시간 등 ‘근로여건 불만족’(44.4%)이었다. 언제 취업하느냐 못지않게 직업의 ‘지속가능성’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취업문 넘었지만…다시 시작된 진로 탐색

첫 취업이 곧 정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을 해본 뒤에야 자신에게 맞는 조건을 깨닫고 다시 구직에 나서는 청년들도 있다. 반년간 다니던 화장품 회사를 퇴사한 후 재취업을 준비하는 한모 씨는 첫 직장을 거치며 자신에게 맞는 일의 조건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상품개발 업무를 하고 싶었던 한씨는 긴 취업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영업직을 택했다. 직무가 적성에 맞지 않는 가운데 고강도의 업무까지 견뎌야 했다. 새벽 퇴근이 비일비재했던 업무 환경 속 그는 업무 스트레스로 이석증을 겪으며 건강을 지키기 위해 퇴사를 결심하게 됐다.

한씨는 “이렇게까지 일을 하면서 내가 얻는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짧은 첫 직장 경험을 통해 다음 일자리에서 ‘직무 적합성’과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은 포기할 수 없는 기준이 됐다”고 강조했다.

취업을 경험한 뒤 노동시장 밖에 머무는 청년도 적지 않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최근 고용 흐름의 주요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20·30대 ‘쉬었음’ 인구 71만 7000명 가운데 과거 취업 경험자는 59만 8000명으로 83.4%에 달했다. 이 중 절반 정도(28만 5000명)는 최근 1년 안에 직장을 다닌 경험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기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청년들이 졸업한 뒤 곧바로 취업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진학하거나 새로운 일을 준비하는 등 저마다 다른 경로를 거치면서 취업하는 시기도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쉬었음으로 묶이는 청년들의 사정도 같지 않다. 장기간 취업을 준비하다 구직을 단념한 청년이 있는가 하면, 졸업 직후 얼어붙은 채용시장 앞에서 잠시 멈춘 청년, 직장에서 소진된 뒤 회복할 시간이 필요한 청년도 있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김 연구위원은 “취업 후 이른 퇴사를 반복하는 이유는 적성을 충분히 탐색할 기회가 부족한 교육과정과 청년들의 기대를 따라가지 못한 조직문화가 공존한다”며 “자신의 적성을 뒤늦게 알게 된 청년에게 빠른 취업만 요구하기보다 충분한 진로 탐색 기회를 보장하고 기업도 개인 존중과 일·생활의 균형을 갖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규직 취업이라는 하나의 기준을 벗어나 각자의 속도와 방향으로 삶을 꾸리고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 (이미지= 생성형AI 활용 제작)

정규직 취업이라는 하나의 기준을 벗어나 각자의 속도와 방향으로 삶을 꾸리고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 (이미지= 생성형AI 활용 제작)

“수입보다 내 시간”…달라진 일의 기준

직장보다는 다른 가치에 무게를 둔 삶을 원하는 청년들도 많다. 공공기관 단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고 남은 여가 시간에 여행을 다니는 30대 이모 씨도 이데일리와 만나 한때 ‘수입’과 ‘성장’이라는 기준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고 했다.→

그의 생각이 달라진 계기는 잦은 ‘야근’이었다. 정시 퇴근을 하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짬을 낼 수 있지만 야근 후 퇴근하면 곧바로 잠자리에 들어야 해서다. ‘출근→야근→퇴근→수면→출근’으로만 이어지는 쳇바퀴 같은 삶을 살면서 그의 기준은 바뀌었다. 이제 이 씨가 일을 고르는 새로운 우선 순위는 시간, 안정성, 수입이다.

이씨는 현재 삶에 얼마나 만족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80% 만족한다”고 답했다. 좋아하는 취미를 즐기고 원하는 때 여행할 수 있어서다. 앞으로의 일을 고를 때도 지키고 싶은 것으로 취미를 이어갈 시간과 여유를 꼽았다. 그는 “정규직 직장을 중심으로 생활을 꾸릴 수도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상을 중심에 두고 일의 형태와 시간을 선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민하 기자minha1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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