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올리고 돈 푼다…‘하준경식 폴리시믹스’ 변수는 노봉법

입력시간 | 2026.08.30 오후 3:33:26
수정시간 | 2026.08.30 오후 3:47:14
  • 한은은 물가 잡고 정부는 재정으로 공급능력 확충
  • 3대 메가 성패, 민간기업의 실제 투자에 달려
  • 정부 지원만 앞서면 성장효과 낮고 물가 부담 커져
  • 시행지침 마련해도 교섭·쟁의 범위 불확실성 남아
[이데일리 김상윤 황병서 기자] “통화금융정책이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도모하면서 동시에 재정정책이 양극화를 완화하고 공급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경제 전반의 안정적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준경 청와대 경제성장수석은 29일 페이스북에 올린 ‘거시경제정책조합-엇박자일까?’라는 글에서 한국은행의 긴축적 통화정책과 정부의 적극적 재정정책이 반드시 엇박자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한은은 금리로 물가와 가계부채를 억제하고 정부는 재정을 반도체·인공지능(AI) 등에 집중해 공급능력을 키우면 된다는 논리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에 서로 다른 임무를 맡기는 이른바 ‘하준경식 폴리시믹스(policy mix)’다.

다만 이 조합이 성립하려면 늘어난 예산이 생산성과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분야에 쓰이고 정부 지원이 실제 민간투자로 이어져야 한다. 단기 소비를 늘리는 이전지출만 앞서거나 민간기업이 투자를 미루면 재정은 공급보다 총수요를 먼저 자극할 수 있다. 특히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불확실성까지 민간투자를 늦추면 공급 확대는 지연되고 물가 압력과 고금리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준경 대통령비서실 경제성장수석 (사진=연합뉴스)

하준경 대통령비서실 경제성장수석 (사진=연합뉴스)

한은은 돈줄 죄고 정부는 AI 투자…엇박자일까

현재 이재명 정부의 경제정책을 겉으로 보면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은 반대 방향으로 간다. 한은은 지난 27일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3.00%로 올리며 두 달 연속 인상했다. 반면 정부는 내년도 예산을 확대하고 반도체·피지컬AI·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 프로젝트에 재정과 정책금융을 집중한다. 한쪽에서 돈줄을 죄는데 다른 쪽에서는 돈을 푸니 ‘정책 엇박자’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은의 금리 인상은 예상보다 강한 성장세가 물가와 금융불균형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선제적 긴축이다. 반도체 호황과 수출·투자 증가, 내수 회복을 반영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3%, 내년 전망치를 2.9%로 제시했지만,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8%, 근원물가는 2.6%로 물가안정 목표인 2%를 웃돌았다. 수도권 주택가격과 가계대출도 높은 증가세를 이어갔다.

그렇다고 두 정책의 병행이 경제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기준금리는 소비와 주택 구입, 기업 대출·투자 등 경제 전반의 총수요를 억제한다. 반면 재정은 필요한 분야를 골라 지원할 수 있다. 금리로 부동산과 가계대출 등 과도한 수요와 신용을 누르면서 전력망·용수·연구개발(R&D)에는 재정을 투입해 생산능력을 키우는 방식이다.

문제는 실제 사용처다. 재정이 기반시설과 R&D, 인력 양성에 쓰이면 기업의 생산비용을 낮추고 공급능력을 늘릴 수 있다. 직업훈련과 보육·고용서비스 같은 복지·고용 지출도 노동공급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반대로 단기 소비를 늘리는 이전지출에 치우치고 공급 확대 효과가 충분히 나타나지 않으면 한은이 억제하려는 수요를 정부가 다시 밀어 올릴 수 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예산 총액만 가지고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엇박자라고 도매금으로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맞다”면서도 “생산성을 높이고 성장을 끌어올리는 쪽으로 돈을 쓰는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올해 예산 증가분의 상당 부분이 일반·지방행정과 안전, 보건·복지·고용 분야에 배분된 점을 들어 내년도 예산도 증액분의 실제 사용처를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하준경식 폴리시믹스’의 성패는 3대 메가 프로젝트가 실제 민간투자로 이어지느냐에서 갈린다. 정부는 반도체 생산거점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AI 로봇을 산업현장에 보급하는 한편 총 18.4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추진한다. 정부가 전력·용수·산업단지와 R&D, 금융·세제 등을 지원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민간기업이 공장과 데이터센터 건설에 나서는 구조다. 공공투자가 기업의 후속 투자를 끌어내는 ‘민간투자 유발 효과’(crowding-in)가 사업의 뼈대인 셈이다. 정부가 발표한 전체 사업 규모보다 민간자금이 실제 얼마나 들어오고 생산시설이 언제 완공되는지가 더 중요하다.

공공사업과 민간투자가 함께 지연되면 물가 상승보다는 투자와 성장의 손실이 먼저 나타난다. 반면 기반시설 투자와 토지 보상, 보조금 지급은 예정대로 진행됐는데 민간 생산시설 완공만 늦어지면 건설·장비·인력 수요가 제품 공급보다 먼저 증가한다. 이 과정에서 자재와 인력의 공급 여력이 부족하면 비용·물가 압력은 커지고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효과는 뒤로 밀릴 수 있다.

금리 올리고 돈 푼다…‘하준경식 폴리시믹스’ 변수는 노봉법노란봉투법, 민간투자의 예측 가능성 흔드나

문제는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3대 메가 프로젝트의 정책 효과를 좌우할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쟁점은 법 시행 이후 기업이 교섭과 쟁의의 범위를 사전에 예측할 수 있느냐다. 삼성전자 노조가 호남 반도체 투자계획을 단체교섭 의제로 제시하면서 공장 신설과 투자지역 결정 같은 경영상 판단을 둘러싼 논란도 현실화했다.

정부는 경영상 판단 그 자체와 해당 결정이 고용·근로조건에 미치는 영향을 둘러싼 교섭을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동쟁의 대상의 세부 기준은 시행령이 아닌 시행지침에 담기로 했다. 개정 노조법에 하위법령 위임 근거가 없어 시행령으로 쟁의 범위를 제한하면 위법 논란이 발생할 수 있고, 지침은 현장에 신속히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그러나 시행지침은 행정기관의 법 집행 기준일 뿐 법원과 노동위원회의 개별 판단을 구속하는 법규명령은 아니다. 기업으로서는 투자지역 결정이 근로조건과 관련된 교섭 대상인지, 이를 둘러싼 쟁의행위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를 사전에 확신하기 어렵다. 파업과 착공 지연 가능성까지 투자 위험에 반영할 수 있다는 의미다. 수십조원이 들어가고 착공 이후 되돌리기 어려운 반도체 공장일수록 불확실성 자체가 비용이 된다. 신 교수는 “원·하청 교섭과 노동쟁의가 가능한 경우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상윤 기자yoo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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