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자본 둔갑한 정부보증채…증권사, 리스크 줄이는 피난처로

입력시간 | 2026.04.10 오전 5:54:03
수정시간 | 2026.04.10 오전 6:06:17
  • IMA 원금 보장 구조, 고위험 투자와 충돌
  • 증권사, 할당량 채우려 ‘안전판’ 첨단채 선택
  • 정책적 인정 덕에 무위험 자산이 모험자본으로 둔갑
  • “무위험 자산 우회로 차단 안 하면 제도 유명무실”
이 기사는 2026년04월09일 23시53분에 마켓인 프리미엄 콘텐츠로 선공개 되었습니다.


[이데일리 마켓in 이건엄 기자] 종합투자계좌(IMA) 자금이 국공채급 안정성을 지닌 ‘첨단전략산업기금채권(첨단채)’에 쏠리는 현상은 예견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고객 원금을 보장하면서 증권사가 온전히 리스크를 떠안고 모험자본에 투자해야 하는 IMA의 한계와, 첨단채를 모험자본으로 인정한 금융당국의 안일한 태도가 맞물리며 구조적 모순이 심화됐다는 비판이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의 IMA 자금이 첨단채 매입에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배경에는 금융당국의 규제 압박과 제도의 태생적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

현재 금융당국은 종투사가 발행어음 등으로 조달한 자금의 일정 부분 이상을 의무적으로 모험자본에 편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모험자본 투자 의무 비중은 오는 2028년까지 25%로 대폭 확대될 예정이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갈수록 늘어나는 모험자본 할당량을 반드시 채워야 구조다.

문제는 IMA가 증권사의 ‘고객 원금 보장’을 전제로 하는 상품이라는 점이다. 만약 운용 과정에서 혁신 기업 등 실제 고위험 모험자본에 투자했다가 손실이 발생하면 그 타격은 고스란히 증권사의 자기자본 손실로 직결된다. ‘고위험-고수익(하이리스크·하이리턴)’이라는 모험자본의 본질과 ‘원금 보장’이라는 안전판을 억지로 한 바구니에 담으려다 보니 시작부터 스텝이 꼬일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결국 원금 손실 타격을 오롯이 짊어져야 하는 증권사들은 벤처 생태계 등 실제 고위험 투자처보다는 무위험에 가까우면서도 서류상 모험자본으로 분류되는 자산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당국이 정책적 목적을 앞세워 국공채급 안정성을 지닌 첨단채를 모험자본으로 인정해 주면서 종투사들에게 할당량을 채울 수 있는 완벽한 피난처를 제공한 격이 됐다. 증권사들이 생존을 위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며 당국의 규제 비율만 편법으로 채우는 모순적 운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투자처가 마땅치 않은데 당국의 의무 비율 압박은 거세지는 상황에서 자기자본 손실 리스크를 전적으로 무릅쓰고 고위험군에 투자할 곳은 사실상 없다”며 “국공채 수준의 안정성을 가진 첨단채가 모험자본으로 인정받은 만큼 IMA 자금이 첨단채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증권사들이 IMA 자금을 첨단채와 같은 우량 안전자산으로 피신시키는 우회로를 차단하기 위해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모험자본 공급이라는 명분 아래 규제의 틈새만 노리는 기형적인 쏠림 현상을 차단하지 않을 경우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원금을 보장하면서 고위험 모험자본에 투자해야 되는 IMA의 설계 자체가 모순”이라며 “최소한 첨단채처럼 실질이 국공채인 자산을 모험자본 인정 범위에서 제외하거나 편입 한도를 엄격히 제한하는 식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첨단채와 같은 우량 자산마저 모험자본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의 허점을 개선하지 못하면, 모험자본 활성화라는 IMA의 본질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며 “이러한 쏠림 현상이 장기화돼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첨단채 등 사실상의 무위험 자산 편입에 대한 명확한 규제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건엄 기자leeku@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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