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만원 싸게 내놔도 안 팔려요"…애물단지 '지산' 어쩌나[0과 1로 보는 부동산...
- ‘밑 빠진 독’ 지식산업센터…돌파구는?
- 지산 매물만 쌓여가…보러오는 사람 無
- 투자 위주 수요 쏠림 금리 인상기 역풍 못피해가
- 지자체 창업 지원·지역산업 육성 연계로 돌파구 찾아야
수년 전 황금알을 낳을 거라 믿고 분양받은 사무실들이다. 하지만 몇 달째 공실로 남은 이 공간을 김 씨는 분양가보다 수천만 원 낮은 급매로 내놓았다. “매물은 쌓이는데 정작 보러오는 사람이 없어요.” 인근 부동산중개사 박모 대표의 한숨이 깊다. 요즘 가산지역 지산에는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의 매물까지 쏟아져 나오지만, 좀처럼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다.
◇추락하는 지표가 보여준 현실
현장의 절망적인 분위기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알스퀘어애널리틱스(RA)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서울 지산 매매가격 지수는 전년 대비 약 12% 떨어졌다. 거래 절벽은 더욱 심각하다. 같은 기간 총 거래액은 작년의 16% 수준으로 줄어들며 84% 급감했다.
시장이 사실상 완전히 얼어붙었다. 주춤하던 가격 하락세도 다시 가속화되어, 2022년 호황기 정점 대비 가격이 이미 25% 이상 빠졌다. 한때 ‘대체 투자처’로 각광받던 지산 시장은 왜 이토록 급랭하고 있을까.
◇오피스와 다른 지산, 수요의 결정적 차이
전문가들은 지산 시장의 구조적 한계를 지목한다. 외견상 도심 오피스와 비슷하지만, 수요 기반에서 큰 차이가 있다. 대형 오피스 빌딩은 입지와 시설을 무기로 안정적 임차 수요를 누려 왔다. 반면 지산은 작은 호실 단위로 분할되어 개인 투자자와 영세 사업체 위주로 분양된 경우가 많다.
경기가 식으면서 입주 수요가 급감하고, 투자 열기마저 냉랭하면 지탱해줄 탄탄한 임대 수요가 부족하다는 약점이 드러난다. 지식산업센터는 오피스와 달리 양호한 임대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는다. 따라서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가격 상승이 쉽지 않다. 오피스 시장이 실수요와 장기 임대계약으로 어느 정도 지탱되는 반면, 지산 시장은 빈 공간이 그대로 투매 물량으로 쌓이는 악순환에 빠진다.
◇금리 인하의 한계, 드러난 실수요 부재
지난해부터 금리 인상 기조가 멈추고 금리 인하 기대감이 퍼지면서 한때 지산 거래에 활기가 도는 듯했다. 실제로 2024년 3분기에는 금리 정점 통과 기대에 힘입어 서울 지산 거래량이 직전 분기보다 90% 이상 급증하고 가격 지수도 소폭 반등한 바 있다. 그러나 일시적 착시에 불과했다.
근본적 문제는 빈 사무실을 채워줄 기업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금리가 내려가도 공실률 50%에 육박하는 건물에 새로운 임차인을 데려오기 쉽지 않다. 오히려 대출 금리만 낮아질 뿐 임대 수익이 미미하다. 견디던 투자자들이 더 싼 값에 매물을 내놓는 상황이다. 결국 실수요 부재라는 바람 빠진 풍선 앞에서는 금리 인하의 부양 효과도 힘을 받기 어렵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정책 지원의 딜레마와 향후 전망
정부도 지산 활성화를 위해 나섰지만 해법을 찾기 힘들다. 과거 주택시장 규제를 피해 몰린 자금이 지산으로 몰릴 때 적기에 투기 억제책을 마련하지 못한 대가가 지금 나타나고 있다. 뒤늦게 일부 국회의원들이 투자목적 분양 제한 같은 법안을 추진했지만, 시장 침체와 기존 수분양자 피해 우려로 좌초됐다.
당국은 용도 변경 및 업종 제한 완화 등 지산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규제 완화를 검토 중이다. 지산을 공유 업무시설이나 창고, 지식기반 제조공간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하도록 장려해 공실을 메우려는 취지다. 일부 완화 조치는 시행됐지만, 형평성 시비나 투기 조장 논란 탓에 극적인 지원책은 내놓기 어렵다. 게다가 수도권 곳곳에서는 여전히 신규 지산 공급이 이어지고 있어 공급과잉 부담도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희망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 없다. 지산 시장 침체가 길어지자 가격은 계속 낮아져 현실적 수준을 찾는 중이다. 급등기보다 저렴해진 매매가 덕에, 드물지만 실수요 기반의 거래도 차츰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창업 지원, 지역산업 육성과 연계해 공실 해소에 나선다면 빈 공간에 새로운 금맥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아직까지 겨울을 보내고 있는 지산 시장이 언젠가 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민관이 함께 해법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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