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미국의 공격에 따른 핵시설 손상에도 이란이 수개월 내로 농축 우라늄 생산을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의 이란 핵시설 타격으로 이란 핵 프로그램이 수십 년 후퇴했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판단과 배치되는 입장으로 미국의 이란 핵시설 폭격 성과에 대한 논란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23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IAEA 본부에서 열린 IAEA 이사회 특별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사진=AFP)

그로시 사무총장은 28일(현지시간) 미국 CBS 시사 프로그램 ‘페이스 더 네이션’과 인터뷰에서 이란의 핵시설이 최근 미군 공습과 이스라엘의 공작으로 인해 상당 부분 파괴됐지만, 이란이 원하면 수개월 내에 다시 우라늄 농축 생산을 재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이란 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 등 주요 핵시설들이 심각한 수준으로 파괴됐지만 “일부는 여전히 건재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공격으로 인해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 지연됐는지 각국 정보기관들의 평가가 다르다는 지적에 “몇 개월 내에 소수의 원심분리기를 가동해 농축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는 수준까지 회복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완전한 파괴는 아니며, 기술·산업 인프라는 여전히 존재해 의지만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 발언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타격으로 이란의 핵무장 시도는 사실상 끝났다고 본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과 배치되는 것이다.

그로시 총장은 “이란은 매우 정교한 핵기술을 갖춘 국가이며, 이러한 지식과 능력은 제거할 수 없는 것”이라며 “군사 작전만으로는 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결국은 검증 가능한 합의와 감시 체계를 통한 외교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로시 총장은 이란이 기존에 생산했던 약 400㎏에 달하는 고농축 우라늄의 일부 또는 전부를 공격받기 전에 이동시켰는지는 “방호 조치 일환으로 일부를 옮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지만 정확히 어디로 옮겨졌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고농축 우라늄은 핵분열이 가능한 동위원소의 순도가 60%에 달하는 것으로 핵탄두의 원료로 쓰이는 순도 90% 정도의 무기급으로 단시간에 가공될 수 있다. 이어 그는 “일부는 공격으로 파괴됐을 수 있고, 일부는 이동했을 수 있다”면서 “명확한 해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 문제가 계속 불안 요소로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발언 역시 “시설에서 아무것도 밖으로 옮겨지지 않았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상반되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 24일 이스라엘·이란 간 휴전이 성사된 뒤 이란 핵 프로그램 폐기의 대가로 대이란 제재 해제, 우라늄 농축 없는 민수용 핵 프로그램 투자 방안 등을 논의해왔다.

그러나 이란 의회는 지난 25일 IAEA와의 협력을 잠정 중단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결의안에는 이란의 핵시설과 평화적 핵 활동에 대한 안전이 보장될 때까지 IAEA 사찰관의 이란 입국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그로시 총장은 군사공격 이후의 해법은 외교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란은 NPT(핵확산금지조약) 가입국이며, 190개국 이상과 마찬가지로 IAEA와 협력 의무가 있다”며 “이란 의회에서 통과된 법을 우리가 분석해보니 시설의 안전과 보안을 이유로 협력 방식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었고, 이는 사찰과도 양립 가능하다고 본다. 결국은 이란 당국과 직접 만나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지난 26일 이란이 이스라엘과 미국에 승리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핵 프로그램 폐기 요구는 헛소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하메네이의 승리 선언을 거짓말로 규정하면서 “그의 나라(이란)는 초토화됐고, 이란의 사악한 핵 시설 세 곳은 완전히 파괴됐다”고 주장했다. 또 하메네이의 은신처를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미국과 이스라엘 군대가 그를 제거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며 “매우 끔찍하고 치욕스러운 죽음에서 구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