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갈 각오" 회계부정은 '살인죄'…벼랑위 기업인들
- [교도소 담장 위 걷는 기업인들]
- 산업계 토로에…李대통령, 형벌 합리화 지시
- 6500개 넘는 형벌 규정, 기업하기 어렵게 해
- "규제 혁파 목소리처럼 형벌 완화 공론화해야"
- '고무줄 배임죄' 기업 무사안일주의 만연 주범
그런데 이는 형법상 ‘직계존속에 대한 상해치사 형량’과 같다. 회계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법 취지는 타당하지만, 사람이 죽은 것과 같은 수준의 처벌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게 경제계의 시각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모기를 잡는데 살충제를 쓰면 되는데, 폭탄을 사용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꼬집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행정조사를 실시할 때 고의적으로 현장 진입을 저지·지연하면서 조사를 거부하면 현행법상 3년 이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다만 “이 정도 위법 행위가 징역 살 정도는 아니지 않느냐”는 볼멘소리가 많다.
실제 공정위는 과거 한 외국계 기업 B사의 한국지사에 대한 행정조사를 진행했는데, 자료 미제출과 현장 진입 방해 등에 대해 과태료 3억원을 부과하고 법인과 임원 1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는 고발한 임원이 보안 요원과 함께 조사관의 현장 진입을 30분간 지연시켰다고 주장했으나, 검찰은 이를 두고 형사처벌이 필요한 수준의 법 위반은 아니라고 명시했다. 결국 검찰은 해당 법인과 임원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재계 한 고위인사는 이를 두고 “현행 경제법률을 보면 징역, 자격정지, 몰수 등 형벌의 상당수는 과태료 같은 행정제재로 전환할 수 있다”며 “문제 해결에 별다른 효과가 없는 형벌보다 행정제재가 더 실효성이 있다”고 했다. 이 인사는 “그래야 기업인들이 전과자가 되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李대통령, 경제형벌 합리화 지시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기업인들과 연쇄 회동 이후 각 부처에 형벌 합리화를 지시한 것은 이같은 경영상 고충 사례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본사가 해외에 있는 외국계 기업들은 “한국에서 사업하면 감옥에 갈 수 있다”는 얘기들이 실제 많다고 한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와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가 최근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등에 대놓고 반발한 것은 이같은 기류가 깔려 있다.

(그래픽=문승용 기자)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 2021년 당시 6개월여에 걸쳐 16개 부처 소관 경제 법률의 형벌 규정을 전수조사한 결과를 보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조사 결과 301개 경제 법률은 6568건의 법 위반 행위에 대해 형벌(징역, 벌금 등)을 규정했다. 이는 4년이 지난 지금은 더 늘어났을 것이라고 재계 인사들은 전했다. 전체 처벌 항목의 평균 징역 기간은 3.70년, 벌금 액수는 6227만원으로 나타났다.
특히 6568건 중 2376건(36.2%)은 법 위반에 대해 징역 또는 벌금을 포함한 두 개 이상의 처벌·제재 수단을 규정했다. 징역, 벌금, 몰수, 자격정지, 과징금 등을 한꺼번에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중처벌이 1561개(23.8%)로 가장 많았다. 3중처벌(714개·10.9%), 4중처벌(41개·0.6%), 5중처벌(60개·0.9%) 등도 적지 않았다.
한경협이 2022년 당시 공정위 소관 10개 법률의 형벌 조항을 전수조사한 결과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업 처벌 항목 274개 중 217개(79.2%)에 대해 개선 여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서다. 개선 필요 사유는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 위배 우려’가 178개(82.0%)로 가장 많았다. 기본권을 과하게 제한할 소지가 다분한 형벌들이 많다는 것이다. 공정위 행정조사 지연 행위 등처럼 행정제재로 다룰 수 있는 항목들이 많다는 뜻이다. 한경협 한 관계자는 “경영인에 대한 과도한 형벌은 기업가정신을 훼손해 투자와 일자리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래픽=문승용 기자)
“규제 못지않게 형벌 공론화 필요”
재계 관계자들은 규제 혁파 못지않게 형벌 완화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기업 A사의 한 인사는 “기업 형벌도 규제처럼 방치하면 계속 늘어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계속 공론화해서 처벌 수위를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대기업은 그나마 낫지만 더 큰 피해는 경영 여건이 취약한 중소기업이 볼 것”이라고 전했다.
이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완화를 천명한 배임죄 역시 마찬가지다. 배임죄는 기업인들이 신의성실의 원칙을 어기고 이익을 취하거나 재산상 손해를 발생시킬 때 적용할 수 있다. 그런데 배임죄 적용 기준이 ‘고무줄’과 같다 보니 기업인들이 모험 투자를 꺼린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국내 산업계 내부에 팽배한 무사안일주의는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해외 주요국들은 다르다. 미국과 영국은 배임죄가 없다. 일본과 독일은 경영상 판단은 처벌하지 않는 면책 규정을 두고 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 형벌 제도는 글로벌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며 “과도한 형벌은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를 만들어 결국 일반 근로자들을 힘들게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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