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앞에 '빈티지'가 흔들린다[최종수의 기후이야기]

입력시간 | 2025.08.25 오전 5:00:00
수정시간 | 2025.08.25 오전 5:00:00
  • 수세기 이어온 와인의 풍미, 수십년 만에 맛의 균형 깨져
  • 기온 상승에 바뀐 와인지도, 우리 삶에 보내는 경고인 셈

지난 6월 2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서울국제주류&와인박람회에서 관람객이 와인을 시음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최종수 환경칼럼니스트] 술을 빼놓고 인류 문명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만큼 술의 기원은 오래됐다. 특히 와인은 가장 긴 역사를 지닌 술로 그 시작은 기원전 6000년께 현재의 조지아 지역인 코카서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 무덤 벽화에도 포도를 수확해 와인을 빚는 장면이 남아 있는데 이는 와인이 단순한 술이 아니라 삶과 신앙의 일부였음을 보여준다. 이후 와인은 그리스와 로마 제국을 거치며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중세 수도원의 양조 전통은 오늘날 프랑스 보르도나 이탈리아 토스카나와 같은 명산지로 이어졌다. 오늘날 와인 산지는 유럽을 넘어 미국 캘리포니아, 칠레, 호주 등 전 세계로 확장했다. 반면 한때 와인의 무대였던 이집트는 이제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소규모 생산으로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다. 과거 나일강 하구의 비옥했던 땅이 사막화와 기후변화로 포도 재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와인의 역사는 곧 기후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처럼 와인은 언제나 자연조건에 의해 운명이 결정돼 왔다. 프랑스는 뛰어난 자연환경과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양조 전통을 바탕으로 와인을 하나의 문화이자 예술로 완성했다. 그중에서도 보르도, 부르고뉴, 샴페인 지역은 토양, 일조량, 강수량, 기온차 등 이른바 ‘떼루아’(terroir)가 이상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와인의 품질은 광합성에 필요한 빛, 낮과 밤의 온도차, 수분의 균형 같은 세심한 기후 요소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심지어 같은 품종이라도 떼루아의 차이에 따라 전혀 다른 풍미를 띤다. 예컨대 피노누아는 프랑스 부르고뉴에서는 섬세하고 우아한 향을, 미국 오리건에서는 보다 농밀하고 과실향이 강한 풍미를 낸다.

알맞은 일조량은 당도를 높이고 서늘한 밤 기온은 산도를 유지시키며 적절한 강수량은 포도의 성장을 돕고 풍미를 조화롭게 한다. 이처럼 기후 조건이 곧 와인의 맛을 좌우하기 때문에 “와인을 마신다는 것은 그 해의 날씨를 마시는 것”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주 언급되는 개념이 바로 ‘빈티지’(vintage)다. 빈티지는 특정 해에 수확된 포도로 만든 와인을 뜻하며 같은 포도밭에서 같은 품종을 재배하더라도 그 해의 기후 조건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 그래서 애호가들은 해마다 빈티지를 세심하게 평가하고 어떤 해의 와인에 대해서는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와인은 결국 자연과 기후가 빚어낸 결정체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 이 절묘한 균형이 흔들리고 있다. 기후변화 때문이다. 전 세계 대부분의 전통 와인 산지에서는 수확 시기가 2~3주 빨라지고 있다. 이로 인해 포도가 덜 익은 채로 수확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빨리 익어 당도는 높아지고 산도는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결국 맛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2024년 프랑스 보르도 대학과 부르고뉴 대학 연구팀은 200편 이상의 연구를 종합해 지구 온난화로 전 세계 포도 재배 지역의 최대 70%가 부적합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기온이 2℃ 이상 오르면 기존 산지의 29%는 고급 와인 생산이 불가능해지고 41%는 적응 방법에 따라 재배 가능성이 달라질 것으로 전망됐다. 실제로 지중해 연안과 미국 서부와 같은 전통 산지는 고온과 가뭄으로 위기에 놓인 반면 영국 남부나 북유럽, 호주 남부와 같이 서늘한 지역은 새로운 산지로 떠오르고 있다. 기후가 바뀌면 와인 지도도 바뀐다.

와인은 단순한 술이 아니다. 자연의 이야기이자 기후의 기록이다. 우리는 흔히 기후변화를 거대한 담론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다. 소소한 일상의 기쁨을 상실하는 것은 단순한 아쉬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보르도의 카베르네 소비뇽이 앞으로도 예전의 맛을 낼 수 있을 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북유럽의 피노누아가 그 자리를 대신할지도 모른다. 수세기에 걸쳐 이어온 와인의 풍미가 불과 수십 년 만에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은 기후변화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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