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지난해 8월 인천 청라국제도시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해 차량 880대가 소실되고 717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전국에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가 일파만파 확산되고 정부와 각 지자체는 전기차 화재 대응책을 잇따라 내놓기도 했다.

21일 킨텍스에서 개최된 ‘전기차 충전인프라 산업전’에 전시된 전기차 화재 대응장비 (사진=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주차장을 짓는 건설업계에서도 전기차 화재 대응은 중대한 과제로 떠올랐다. 전기차 전환이 가속화 하는 가운데, 고객들이 안심하고 안전하게 입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한 세일즈 포인트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건설·건축·인테리어 전문 전시회 ‘코리아빌드위크’와 ‘2025 전기차 충전인프라 산업전’이 함께 열렸다. 이날 산업전에 참가한 업체들은 스마트 기술을 접목한 전기차 화재 대응 기술을 선보였다.

전기차 화재는 ‘열폭주’ 현상으로 인해 기존 내연기관 차량 화재보다 진압이 어렵고 장시간 지속된다는 특성이 있다. 이에 화재가 발생한 차량을 서둘러 ‘소화용 질식포’로 덮어 산소를 차단하고 불길과 연기가 사방으로 퍼지는 것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전기차 충전인프라 산업전’에 전시된 전기차 화재 살수장치 (사진=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이에 업계는 화재가 발생하면 천장 등에 설치된 질식포가 자동으로 이동해 차량을 덮는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있다. 소방대가 출동해 본 진화에 나서기 전까지 충분한 ‘골든타임’을 확보하고 인접한 차량으로 화재가 전이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관련 업체 관계자는 “질식포의 재사용 횟수를 높여 비용을 절감하고, 친환경 재질을 사용해 오염 확산을 막는 방향 등으로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며 “지난해 11월에도 충남 아산시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에 불이 났지만, 질식포로 빠르게 대처해 피해가 경미한 수준에 그쳤다”고 소개했다.

전기차 배터리 화재는 일반적인 스프링클러로 진압할 수 없어 특수한 살수장치가 필요하다. 이에 업계는 현장의 여건에 맞춰 설치할 수 있는 고정식·이동식 전기차 화재 진압 장비를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수압만으로 배터리팩에 구멍을 뚫어 배터리 내부에 직접 물을 분사하거나, 배터리를 냉각시킬 수 있는 특수한 약품을 첨가한 소화기 등이다.

화재 위험 징후를 조기에 잡아내는 감지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기존의 화재경보기는 연기나 불길을 감지한 뒤 경보를 울렸지만, 열화상카메라와 스마트 기술이 적용된 감지기는 주차된 전기차의 과열 상태를 조기에 감지하고 경보를 울린다. 당장 연기나 불길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조기에 과열 현상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기차 충전인프라 산업전’에서 한 관계자가 소화용 질식포 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전기차 화재 소식이 잇따르면서 화재 예방·진압 장비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화재진압 솔루션 업체 관계자는 “청라 아파트 사고 이후 관련 장비 설치 문의가 부쩍 늘었다”며 “민간 아파트 단지들이 선제적으로 화재 예방에 나설 뿐만 아니라 공공시설에서도 관련 주문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전기차 전환 정책으로 전기차 충전소와 주차대수가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보이고 그만큼 전기차 화재 관련 장비에 대한 수요도 계속 높아질 것”이라며 “업계는 장비 성능 향상뿐만 아니라 설치 비용 절감에도 주력하고 있어 앞으로 아파트 단지 등 입주자들도 큰 부담 없이 장비를 설치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