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권혜미 기자] 14년 전인 2011년 5월 8일. 경북 문경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숨진 채 발견된 남성의 사건 현장에서 신경안정제 성분이 든 심장약이 발견됐다.

사건은 그로부터 7일 전인 5월 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경상북도 문경시 농암면 둔덕산 속칭 ‘고모치 광산’(해발 900m)에서 십자가(높이 187㎝, 가로 180㎝)에 못 박힌 김모(당시 58세)씨의 시체가 발견됐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유튜브 채널 캡처

택시기사 출신인 김씨는 발견 당시 흰색 속옷 차림으로, 머리 위에는 가시 면류관이 씌어져 있었다. 양손과 발에는 못이 박힌 채 십자가에 매달린 모습이었고, 오른쪽 복부에는 흉기에 찔린 것으로 추정되는 상처까지 남아 있었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할 때의 모습과 성흔이 그대로 재현된 것이었다. 심지어 시신이 발견된 곳 또한 채석장으로 사용되다 폐쇄된 곳이어서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한 골고다 언덕과 유사하게 보였다.

김씨의 바로 앞에는 거울이 있었으며, 주변에는 청테이프를 찢어 만든 채찍모양의 도구도 발견됐다. 사건 현장에서 100m가량 떨어진 김씨의 차량에서는 김씨가 구입한 것으로 파악되는 텐트, 망치, 핸드드릴, 칼, 철사, 톱, 초코파이 20개, 물통, 십자가 제작 설계도, 십자가 메는 방법을 메모한 A4용지 2매 등이 발견됐다. 더불어 사건 현장에서는 120알짜리 약통에서 5알이 남은 신경안정제 성분이 든 심장약도 발견됐다. 다만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2011년 5월 4일 경북 문경시 농암면의 한 폐채석장에 십자가에 매달려 숨진 김모(58)씨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못과 나무토막이 남아 있다.(사진=연합뉴스)

경찰은 특별한 타살 증거나 혐의가 없다는 이유로 자살 쪽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했다. 현장에서 나온 십자가 제작법이나 규격, 실행계획 등을 적어 놓은 A4용지는 김씨의 필체로 작성된 게 맞았으며, 김씨가 평소 자신을 예수와 동일시하며 기독교에 깊이 빠져 있었다는 지인의 진술도 확보됐기 때문이다.

또 김씨가 사건 발생 한 달 전부터 신변을 정리한 정황도 나왔다. 4월부터 자신의 신형 4륜구동차를 몰고 창원에서 문경으로 넘어왔던 김씨는 폐채석장 부근에 천막을 치고 생활해 왔다. 그러던 중 김씨는 김해의 한 제재소에서 십자가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구입했고, 통장을 해지한 뒤 현금 900여만원을 인출해 자신의 형 앞으로 900만원을 송금했다. 남은 금액은 불우이웃돕기 성금함에 넣은 것으로 확인됐다.

무엇보다 특별한 타살 혐의나 제3자 개입 증거가 없다는 점이 자살로 보는 유력한 이유였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면봉이나 손톱, 면류관, 끈, 칼 등에서는 김씨의 DNA만 검출됐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유튜브 채널 캡처

다만 스스로 못을 박을 때 느껴지는 고통을 어떻게 참을 수 있었는지, 주저한 흔적이 김씨의 신체에 없는 점 등은 의문으로 남았다.

결국 경찰은 사건 발생 17일 만에 국과수의 부검 결과와 유전자ㆍ필적 감정 결과, 주변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끝에 자살로 판단하고 수사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배 부위의 찔린 상처는 현장에서 발견된 흉기에 의해 발생할 수 있고 목이나 배 등의 끈자국, 손에 뚫린 상처 모두 현장에 있던 도구로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 국과수의 의견이다.

심장약과 관련해 국과수는 다량 복용했을 때 마비나 환각증세가 나타날 수 있지만 김씨의 몸에서 인체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약물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국과수는 현장 상황과 김씨의 메모를 근거로 사건을 재현한 결과, 성인 남자 혼자 범행을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행위의 심한 고통을 참을 수 있었던 것은 깊은 종교적 신념이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사건 현장 인근에 세워져 있던 김씨의 차량 내부 모습.(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