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혜선 기자] 1999년 5월 20일 오전 11시. 6살 어린이 김태완군(만 4세)이 학원에 가기 위해 집 밖으로 나섰다. 여느 때처럼 주택가 골목길을 걷던 김군에게 낮선 남성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든 남성은 돌연 김군의 머리카락을 잡아 당겨 입을 벌리게 하고, 얼굴에 봉지에 들어 있던 액체를 부었다. 김군의 눈과 입으로 들어간 액체는 황산이었다.

(사진=유튜브 갈무리)

김군의 어머니는 아들의 처참한 모습을 목격했다. 어린 아들은 황산으로 신체가 심각하게 훼손돼 집으로 기어서 도망치고 있었다. 김군은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40~45%의 3도 화상을 입었고, 두 눈은 모두 실명됐다. 고통 속에 49일간 사경을 헤매던 김군은 그해 7월 8일 짧은 생을 마쳤다.

대낮에 벌어진 끔찍한 살인사건에 전국은 충격으로 물들었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유일한 목격자는 김군의 친구였지만, 경찰은 친구가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진술을 받지 않았다. 피해자인 김군은 사건 5일 만에 깨어났고, 김군의 부모는 캠코더와 녹음장비 등을 준비해 고통 속에 아이에게 사건 당시 벌어진 일을 캐물었다. 김군은 생사를 오가면서도 ‘검은 봉지로 황산을 끼얹었다’는 진술을 했지만, 이조차 경찰은 믿지 않았다고 김군의 부모님은 2014년 방송을 통해 주장했다. 김군의 진술은 부모의 유도 진술에 의한 것이기에 신빙성이 없다며 묵살됐다고 한다.

결국 이 사건은 범인을 특정하지 못하고 시간이 흘렀다. 사건 역시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죄’가 적용되어 공소시효는 10년으로 적용됐다.

시간이 더 흘러 2013년 12월 3일, 경찰은 김군의 사건에 ‘살인’ 혐의를 적용해 공소시효를 15년으로 적용하고 재수사를 시작했다. 김군이 숨진 날을 기준으로 공소시효는 2014년 7월 7일까지 연장됐고, 진범을 찾기 위한 수사가 시작됐다.

김군의 부모가 녹음한 진술을 대상으로 12명의 전문가들이 달라붙어 분석을 했지만, 결정적으로 진범을 지목할 수는 없었다. 다만 전문가들은 ‘김군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는 경찰 결론과 달리 ‘믿을 만한 증언’이라는 결론을 냈다. 김군의 진술 속에는 청각장애인 친구 외에도 ‘학습지 교사’ 등 사건 목격자가 될 수 있었던 이들이 등장했다.

이밖에 당시 피의자로 의심 받은 A씨가 ‘김군의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한 것과, 김군을 발견한 사람들이 ‘비명소리는 없었다’고 주장한 것이 배치된다는 점, 김군의 진술과 A씨의 진술이 상이한 점 등이 지적됐다. 결과적으로 경찰의 초동 수사가 부실해 진범을 제대로 지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공소시효 연장에도 김군을 잔혹하게 살해한 진범은 밝혀낼 수 없었다. 그렇게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이 사건은 ‘영구 미제’로 분류되게 됐다.

어린 아이의 억울한 죽음에 사회에서는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에 대한 논의가 뜨겁게 일었다. 이에 국회에서는 2015년 7월 24일 만장일치로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태완이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정작 태완 군의 사건은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돼 적용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