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채나연 기자] 2023년 2월 16일 아내를 살해한 뒤 저수지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 A씨가 필리핀에서 검거됐다. 국내로 송환예정이던 그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필리핀 교도소에 수감된 이유는 무엇일까.

충남 서산에서 아내를 살해하고 저수지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 용의자 A씨.(사진=‘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이 사건은 2023년 1월 25일께 경찰에 서산 모 회사에 다니는 ‘B씨가 설 연휴가 끝난 뒤 출근하지 않는다’는 신고가 접수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수사에 들어간 경찰은 B씨의 휴대전화 이동 동선을 추적한 끝에 태안 고남면 한 저수지 인근에서 휴대전화 위치정보시스템(GPS)이 끊긴 것을 확인했다.

이를 근거로 수일간 저수지 일대를 수색한 결과 같은 달 31일 꽁꽁 언 저수지 아래서 B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부검 결과 B씨 몸에서 발견된 10여 군데 찔린 흔적과 복부에 커다랗게 베인 흔적은 모두 사후 생긴 자상으로 밝혀졌다.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질식사였다.

경찰이 이들 부부가 거주하는 아파트 주변 CCTV 등을 분석한 결과 A씨가 사건 당일 B씨의 사체로 추정되는 물체를 승용차에 싣고 저수지 부근에서 50여 분간 머문 사실이 확인됐다.

이들 부부의 주변인을 상대로 탐문 수사한 결과 A씨가 결혼 전 큰 빚을 진 뒤 이를 숨기고 B씨와 결혼해 금전적인 문제로 자주 다툰 증언도 확보했다.

경찰은 남편 A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판단해 체포에 나섰으나 A씨는 이미 아내 명의로 대출을 받은 뒤 해외로 출국한 상태였다.

이에 경찰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사무총국에 인터폴 적색수배 등을 요청하고, 상대국 법 집행기관과 경찰주재관 등에게 검거를 요청했다.

베트남 다낭으로 출국 후 태국과 캄보디아를 거쳐 필리핀 공항으로 입국하던 A씨는 마닐라공항에서 붙잡혔다.

그런데 구금, 국내 송환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필리핀 당국의 추병결정 등 송환절차가 늦어지면서 3개월이 흘렀고 필리핀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에 수감 중이던 A씨가 탈옥했다.

탈옥 8일 뒤인 5월 29일 필리핀 산후안시티에 있는 한 콘도에서 A씨가 검거됐다. 당시 A씨는 한국인 남성 임씨와 여성 김씨와 함께 있었다.

현장에서는 약 3만3천명이 투약할 수 있는 거대한 양의 마약 1kg이 발견됐다. 결국 강씨가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되며 국내 송환이 다시 미뤄졌다.

필리핀법상 외국인이 마약을 거래하면 종신형에 처해진다. 이런 경우 한국 송환이 불가능해지며 현지에서 처벌 받게된다.

그러나 A씨가 종신형을 받을 경우 수감되는 필리핀의 뉴빌리비드 교도소는 통제가 거의 없고 돈만 있으면 VIP 생활이 가능한 곳으로 알려졌다.

이에 A씨가 필리핀 법을 악용해 국내 강제 송환을 피하고 필리핀 교도소서 자유롭게 생활하고자 마약 범행을 인정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A씨가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는다면 해당 사건은 결국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된다.

실제로 한국에서 중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이 해외로 도피한 뒤 이와 같은 수법을 이용해 강제 송환을 피하고 있는 사례가 늘어나자 형사사법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5월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연합뉴스에 “형사주권의 문제이므로 필리핀 당국이 자발적·적극적으로 협조해 국내 송환할 수 있게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국제조약 등으로 명문화하는 것은 주권 침해 소지가 있어 물밑에서 형사사법공조를 강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