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헌 "'남셋여셋' 시절, MBC 가기 괴로웠다"(인터뷰)

입력시간 | 2018.11.18 오전 8:00:10
수정시간 | 2018.11.18 오전 8:00:10

사진제공=아이윌 미디어

[이데일리 스타in 김윤지 기자]“‘남자셋 여자셋’을 촬영할 땐 매일 MBC 스튜디오에 불이 났으면 했다. (웃음) 촬영장을 가면서 ‘오늘도 하루 종일 혼나겠지’라고 생각했다. 연기는 그저 직업이었다. 재미도 없었고 노력도 안했다.”

순식간에 이뤄진 데뷔였다. 시작은 한 시대를 풍미한 시트콤이었다. 갓 데뷔한 신인이었지만 조각 같은 외모가 여성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용돈벌이 삼아 찍었던 사진이 청바지 브랜드 카탈로그가 됐다. 이를 계기로 배운 적도 없고, 꿈꾸지도 않았던 연기를 시작했다. ‘캐스팅됐다’는 말을 듣고 1주일 후 TV에서 보던 사람들과 같이 TV에 나왔다. 그가 기억하는 22년 전은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지만 “욕도 많이 먹고 너무 힘들었던” 시기였다. 배우 송승헌이었다.

지난 이야기를 툭툭 털어놓는 그의 모습은 의외였다. 지난 11일 종영한 케이블채널 OCN 드라마 ‘플레이어’(극본 신재형, 연출 고재현)도 마찬가지였다. 범죄 액션물인 ‘플레이어’에서 송승헌은 사기꾼 장하리 역을 맡았다. 능청스러운 면모로 웃음을 안겼다. 촌스러운 가발을 쓰는 등 마음껏 망가지기도 했다.

사진=‘플레이어’ 스틸컷

한결 가벼워진 송승헌은 작품 외적으로도 새로웠다. “원래 연기를 잘하지 못했다”고 셀프디스를 하는가 하면, “예능을 통한 일상 공개는 부담스럽다”, “혼자 가는 여행은 가본 적이 없다”며 쑥스러워 했다. 20년 동안 꾸준한 자기 관리에 대해 “작품이 없을 때 자기 관리를 더 열심히 한다”고 답했고, “연인 보다 친구들 만나는 게 좋다”는 소년의 면모를 보여줬다.

“배우로서 다시 봤다”는 대중의 반응에 그는 힘을 얻었다고 했다. 송승헌은 “그동안 연기적으로 닫혀 있었던 건 아니었나 반성했다”면서 “결국 남는 건 작품이다.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아이윌 미디어

이하 일문일답이다.

―‘플레이어’는 사기꾼(송승헌), 운전수(정수정), 해커(이시언), 파이터(태원석) 등 캐릭터의 색깔이 뚜렷한 작품이었다. 그만큼 배우들의 어울림도 좋았다.

△처음 만났을 땐 어색했다. 다들 낯을 가리는 성격이다. 서먹서먹했다. 연장자니까 나서서 무엇이든 같이 하려고 했다.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이야기도 많이 하려고 했다. 조금씩 친해졌다. (정)수정이는 낯을 많이 가리더라. 나이 차도 있었다. 서태지와 2002 한일 월드컵에 대한 기억이 없더라. 그럴 땐 세대 차를 느꼈지만 촬영하면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멤버 그대로 시즌2를 원하는 시청자도 있다.

△고재현 감독님은 이 캐릭터들을 오래도록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농담처럼 다음 시즌에 해외도 가자고 했다. 할 수 있다면 시즌제로 가고 싶다.

―무엇보다 ‘플레이어’의 성과는 색다른 송승헌이었다. 사기꾼이란 옷이 잘 어울렸다. 연달아 장르물인 점도 이색적이다.

△‘진작 장르물을 할걸’ 싶더라. ‘다시 봤다’는 시청자 반응에 기분이 좋았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너무 멋진 캐릭터만 고집한 게 아니었나 되돌아 봤다. 영화 ‘인간중독’(2014)이 전환점이 됐다. 불륜이 소재 아닌가. 20대 송승헌이라면 하지 않았을 역할이다. 이후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아빠도 됐고(영화 ‘미쓰 와이프’, 2015), 편견이 있던 사극(SBS ‘사임당’, 2017)도 해봤다. 일본 앞잡이(영화 ‘대장 김창수’, 2017), 저승사자(OCN ‘블랙’, 2017) 캐릭터도 있었다. 안성기 선배님이 해주신 말씀이 있다. 너무 쉬지 말고, 얽매이지 말라고 하셨다. 남는 건 작품이란 말씀이 마음에 남았다.

사진=더좋은이엔티

―작품 선택 기준이 궁금하다. 꾸준히 활동하고 성적도 좋은 편이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어떨 땐 특정 장면이나 대사에 꽂혀서 결정할 때도 있다. 주변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대중에 가장 가까운 시선이니까. 스태프들이 ‘재미있다’고 하면 결과가 좋다. ‘플레이어’도 그랬다.

―사기꾼 송승헌은 새로웠다. 그런 능글맞은 면도 본인에게 있나.

△고재현 감독과 오랜 사이다. KBS2 ‘여름향기’(2003) 때 조연출이었다. 워낙 친하다 보니 장난스러운 송승헌, 짓궂은 송승헌을 다 알고 있다. 그걸 강하리란 인물에 담아 보여주고 싶다고 감독님이 말씀했다. 심각하게 가지 말자고 했다. 기자로 분장한 가발신도 그랬다. 비주얼은 엉망이었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니 기분이 좋았다. 어렸을 땐 멋진 것만 고집했다. 평가도 박했다. 오히려 힘을 빼니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아 신기했다.

사진=‘남자셋여자셋’ 방송화면 캡처

―돌이켜 보면 데뷔작이 MBC 시트콤 ‘남자 셋 여자셋’(1996)이다. 그땐 어땠나.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데뷔작 아닌가. 그땐 연기자도 아니었다. 30대 초반까지 힘들었다. KBS2 ‘가을동화’(2000) 때도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정작 촬영장이 버거웠다. 과분한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상황에 떠밀려 20대를 보냈다. 제대 후 팬레터를 받았는데 제가 연기한 작품으로 행복하단 내용이었다. 그러니 저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제 자신이 부끄럽더라. 그저 일이었는데 누군가 감동했다니까 창피했다.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내 일’이란 확신이 들 때가 언제였나.

△배우로서 즐거움을 최근에 느끼고 있다. ‘인간중독’ 이후 선택함에 있어 편해졌다. 그 연장선상에서 ‘블랙’도 할 수 있었다. 요즘엔 현장 가는 게 즐겁고 재미있다. 그전에는 일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달라진 제작 환경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는 미니시리즈라라고 하면 2~3달 동안 잠을 못잔다는 뜻이었다. 스태프들 대우나 조건도 열악했다. 그런 생활을 하면서 예민해졌다. 현장에서 쪽대본이 나오는데, 그걸 무조건 해내야 했다. 그러면서도 ‘남들 다 하는데? 넌 왜?’란 분위기였다. 준비가 되지 않았던 저에겐 그런 환경이 힘들었다.

사진=더좋은이엔티

―지금이 좀 더 편안한가.

△확실히 그전보다 여유가 생겼다. 그땐 심적으로도 예민했다. 일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차이도 컸다. 친구들 만날 때가 가장 좋았다. 거기선 연예인이 아니지 않나. 친구들 만나는 걸 너무 좋아했다. 당시 여자친구와 그걸 이유로 다퉜다. ‘내가 좋아, 친구가 좋아’하고. (웃음)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나.

△해보지 않은 게 너무 많다. 톰 크루즈가 올해 57세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액션과 멜로를 오가고, 자기 관리도 뛰어나다. 20대 때 저는 서른이 되면 그만둘까 했다. 지금은 목표가 확고하다. 톰 크루즈처럼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배우다. ‘저 배우, 참 멋지게 나이 먹는다’는 말을 듣고 싶다. 예를 들면 누군가의 일대기를 연기한다면 그것도 영광일 것 같다. 며칠 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한동안 계획은 무엇인가.

△우선 휴식을 취할 생각이다. 악기와 언어를 배우고 싶다. 요즘 뭔가 배우는 게 좋다. 한동안 접었던 피아노를 다시 해볼까 생각하고 있다. 차기작은 내년 상반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사진=더좋은이엔티

김윤지 기자jay3@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