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박지성도 놀라게 한 '슛돌이', 차세대 슈퍼스타 우뚝

입력시간 | 2019.06.17 오전 6:00:00
수정시간 | 2019.06.17 오전 6:00:00

2019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볼을 수상한 ‘한국 축구의 희망’ 이강인.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이강인을 처음 봤을 때 ‘뭐 저런 친구가 있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한국 축구의 레전드인 ‘산소탱크’ 박지성(38)이 기억하고 있는 이강인(18·발렌시아)의 첫인상이다. 박지성은 2010년 당시 9살 꼬마였던 이강인과 함께 CF를 찍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포르투갈전에서 박지성이 터뜨렸던 골 장면과 세리머니를 재현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이강인은 2002년 박지성이 보여줬던 가슴 트래핑에 이은 왼발 슈팅을 똑같이 해냈다. 박지성이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 안겼던 것처럼 박지성의 품에 와락 안겼다. 당시에는 패러디 CF의 한 장면이었이었다. 다시 돌아보니 그것은 한국 축구의 전설과 미래의 역사적인 만남이었다.

박지성을 우상 삼아 축구선수의 길로 접어든 이강인은 9년 뒤 한국 축구 역사를 다시 쓰는 주인공이 됐다. 이강인은 16일(이하 한국시간) 폴란드에서 막을 내린 2019 FIFA U-20 월드컵에서 한국의 역사적인 준우승을 이끌면서 대회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수여하는 골든볼을 수상했다. 한국 남자 선수가 FIFA 주관 대회에서 골든볼을 받은 것은 이강인이 최초였다. 그동안 가능성으로 언급됐던 이강인의 재능이 실제 그라운드에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강인은 지난 2007년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 시즌3’에 출연하면서 처음 이름을 알렸다. ‘날아라 슛돌이’는 축구를 좋아하는 어린아이들이 모여 함께 훈련하면서 전 세계 어린이 축구단과 시합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우리 나이로 7살이었던 이강인은 같은 또래들과 비교해 월등히 앞선 실력을 뽐냈다. 당시 ‘날아라 슛돌이’ 팀 감독을 맡았던 유상철 감독(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은 “(이)강인이는 어릴 때부터 남달랐다”며 “기술을 알려주면 스펀지처럼 흡수했던 아이”이라고 떠올렸다. 유상철 감독은 “강인이가 7살 때 처음 만났는데 그 나이에 공을 그렇게 잘 차는 아이는 처음 봤다”며 “특히 킥 정확도가 뛰어났는데 나도 맞히기 힘든 거리에서 크로스바로 정확하게 공을 보냈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강인이 유상철 감독과 골대 맞추기 승부를 해서 이기는 내용은 프로그램상에서 직접 방송됐다. ‘날아라 슛돌이’ 방송과 별개로 인천 유나이티드 U-12 팀에 속해 자기보다 최대 6살이나 많은 형들과 함께 뛰는 등 ‘축구 신동’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떡잎부터 남달랐던 이강인은 2011년 유소년 축구감독의 소개로 스페인에 건너갔다. 몇몇 구단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고 2011년 7월 발렌시아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강인의 실력은 비오는 날 대나무 자라듯 쑥 자랐다. 발렌시아 유소년 팀에서 발군의 기량을 뽐내자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바이에른 뮌헨, 레알 마드리드 등 세계 최고의 빅클럽들이 잇따라 러브콜을 보낼 정도였다.

유소년 무대를 쓸어버린 이강인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1군 무대를 밟기 시작했다. 유럽에 진출한 한국 선수로서 최연소(17세 253일)로 유럽 프로축구 공식경기에 데뷔했다. 올해 1월 13일에는 바야돌리드와의 경기에 교체투입 되면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공식 데뷔전까지 치렀다. 역대 5번째로 프리메라리가 무대를 밟은 한국인 선수가 된 것은 물론 발렌시아 구단 역사상 최연소 리그 데뷔 외국인 선수로 기록됐다.

이번 폴란드 U-20 월드컵은 이강인의 가능성을 전 세계 축구계에 제대로 증명한 무대가 됐다. 차세대 스타를 찾기 위해 전 세계 구단 스카우트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이강인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였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FIFA가 선정하는 ‘주목할 선수’ 10명에도 이름을 올린 이강인은 7경기에서 모두 선발 출전했고 621분이나 그라운드를 누볐다. 2골 4도움을 기록하면서 대표팀 전력의 핵심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의 날카로운 왼발에서 한국 공격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8살의 이강인은 단지 축구 실력만 뛰어난 선수가 아니었다. 형들보다 2살 어린 대표팀 막내였지만 ‘막내형’이라 불릴 정도로 팀을 이끄는 리더 역할을 톡톡히 했다. FIFA도 이강인의 활약을 높이 평가했다. 우승팀 선수가 아님에도 이강인에게 대회 MVP 격인 골든볼 트로피를 안겼다.

U-20 월드컵 골든볼은 슈퍼스타로 발돋움하는 보증수표나 다름없다. 이강인에 앞서 디에고 마라도나, 하비에르 사비올라, 리오넬 메시, 세르히오 아게로, 폴 포그바 등 세계 축구 전설들이 이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8세 나이에 골든볼을 수상한 것은 2005년 대회에서 골든볼과 골든부트(득점왕)를 모두 받은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32·아르헨티나) 이후 14년 만이다.

이강인은 결승전을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우승을 목표로 했는데 이루지 못해 기분이 좋지는 않다”면서도 “골든볼을 받은 건 저에게 잘 해주고 경기장에서 하나가 돼 뛰어 준 형들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준우승을 했지만, 저희는 진짜 후회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한 팀’이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번 대회 이후 이강인의 앞에는 더욱 밝은 미래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 시즌에는 소속팀 발렌시아에서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다. 가능성을 확실히 증명한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레반테, 네덜란드 1부리그 아약스 암스테르담, PSV 에인트호번 등 세계적인 클럽들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성인대표팀에서도 이강인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지난 3월 A매치 때 처음 성인대표팀에 뽑혔지만 출전 기회를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 활약을 발판삼아 유럽 무대에서 꾸준한 활약을 이어간다면 박지성·손흥민의 뒤를 잇는 한국 축구의 기둥이 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이석무 기자sports@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