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 아파트도 현금결제…넘치는 돈에 부동산대책 '백약무효'
- 부동자금 1117조 매월 최대치 경신
- 은행돈 안빌리고 고가 아파트 매입
- 금융통화당국은 8개월째 금리 동결
- 유동성 죄지 않으면 집값 거품 우려 커

그래픽=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VIP 고객 한 분이 며칠 고민하더니 얼마 전 30억원이 넘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사기로 계약서를 썼다고 하더라고요. 작년 주식시장이 좋았을 때 돈 벌어서 현금화를 해 놓은 분이지요. 10억, 20억원 정도 들고 있다가 강남 아파트 사려는 고객들이 요즘 많습니다.”(한 시중은행 PB팀장)갈 곳이 마땅치 않아 금융권 등에 머물고 있는 시중 부동자금이 수익성을 쫓아서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고 있다. 증시나 펀드 수익률이 지지부진해 투자할 곳이 여의치 않자 현금을 쥐고 있는 자산가들이 부동산, 그 중에서도 ‘똘똘한 한 채’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 최근 서울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 아파트값이 들썩이고 있고 서울 내 고가아파트 거래도 살아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시중 부동자금은 계속 늘어나고 있어 부동산시장으로의 쏠림 현상은 더 심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은행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시중 부동자금은 6월 기준 1116조7000억원으로 1년 새 75조원 가량 늘었다. 부동자금은 현금·요구불예금·수시입출식저축성예금·머니마켓펀드·양도성예금증서·증권사투자자 예탁금·6개월 미만 정기예금 등 단기 계좌에 머물고 있는 돈을 말한다. 올 들어서는 거의 매달 사상 최대 규모를 갈아치우는 모양새다.
이처럼 부동자금이 계속 늘어나는 것은 마땅히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대기하는 자금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정기예금 금리가 오르긴 했지만 1년 만기 기준 2%대 초반으로 여전히 낮은 수준이고 주식시장은 최근 불확실성에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올해 초까지 뜨거웠던 가상화폐 시장도 시들해졌다. 시중에 유동성이 넘쳐나는데도 금융통화당국은 기준금리를 8개월째 1.5%로 묶어놓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수석전문위원은 “부동자금이 부동산 외에는 갈 곳이 마땅찮다”며 “시중 여윳돈이 늘었다는 것은 결국 주택시장에 언제든지 진입할 수 있는 자금이 많아졌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런 자금은 부동산 시장 전반으로 흘러가기 보다 ‘돈 되는’ 똘똘한 주택으로 집중되는 모습이다. 8월 들어 20일까지 서울 아파트 실거래 신고 건수 495건 중 66건(13.3%)이 9억원 이상 고가아파트였다. 이 비중은 양도세 중과가 시작된 지난 4월 이후 매달 11~122% 수준을 유지해오다 이달 들어 본격 확대되는 양상이다. 이전 최고가를 갈아치우는 아파트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Y공인 관계자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 정부의 주택 수요 억제 대책이 똘똘한 한채에 대한 쏠림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며 “현금 10억원 정도 보유하고 있는 이들은 전세 안고 살만한 새 아파트를 찾고, 그 보다 돈이 더 많은 자산가들은 전셋값이 낮지만 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재건축 아파트를 주로 사려한다”고 전했다. 정부의 대출 규제로 돈 줄이 막힌 만큼 최근 돈 되는 똘똘한 주택에 투자하려는 이들은 대부분 현금 부자들이라는 게 현장 공인중개사들의 설명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는 수요 억제 일변도의 부동산 대책만 내놓을 게 아니라 시중 유동성을 조이거나 부동자금이 다른 자산시장으로 분산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줄 방안을 서둘러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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